소박한 실천
우리는 모두 스스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제껏 우리가 살아온 과정과 방식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너그럽고 따뜻하며 더없이 품위 있는 사람이기도 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옹졸하고 속 좁은 사람같이 행동한 때도 많았다. 무엇이 우리의 행동을 이렇게 다르게 만드는가? 그때그때의 기분과 상황이 이런 차이를 가져온 것 같다.
이렇게 기분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다 보니 예측 불가능한 사람으로 믿음과 신뢰를 얻기 힘들어진다. 그러나 그런 대접을 받기에는 좀 억울한 면이 많다. 왜냐하면 스스로 얼마든지 우아하고 품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두 속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 품위 있는 사람 아니면 모자라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상황이나 부침하는 기분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자신 속의 우아함과 품위를 드러낼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나라는 존재가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삶이 세속적인 일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일 수 있다. 이런 초월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세상의 흔들림에 따라 움직이는 부평초 비슷한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우리 속에는 세상의 유산인 세속적 모습과 하늘의 선물인 신성과 초월적 모습 두 가지를 다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을 드러내고 키우느냐에 따라 나의 모습과 삶이 달라진다.
사람이 세상의 질곡에 따라 부침하다 보면 정말 우습잖은 모습으로 쉽게 전락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삶의 초점을 속세에 맞출 것이 아니라 하늘에다 맞추어 승화되고 고양된 가치를 따르다 보면 세속적인 세상사는 뒤로 물러나게 되며 거리를 둘 수 있게 될 것이다.
나 자신이 하늘의 유산을 전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세속적인 속세의 특성을 드러내는 사람인지 선택해야 한다. 순간순간의 선택이 우리 삶을 결정한다. 어느 순간에도 진리와 사랑 그리고 이해와 포용성을 드러내면 나도 그리고 관련된 모두도 하늘의 유산인 나와 모두의 신성을 표현해낼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서 주변 사람들도 본을 받아 하늘의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그들 속의 신성과 초월적 자아를 되살려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거울이 되고 있다. 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이 이해와 사랑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내가 어떤 존재이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모여지게 되며 나의 순간적 선택이 무엇인지가 관건이 된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한 고양된 자세와 가치가 없다면 쉽게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첫 번째 일은 우선 나의 본질적 자아를 찾아내어 더욱 고양된 진면목을 회복하고 가꾸어 가는 것이다. 세속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때를 씻으며 정화된 모습과 자세로 살아감으로써 내 주변부터 자연스럽게 맑아지고 밝아지며 선한 영향력이 전파되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집안에 아니면 마을에 한 사람이라도 선한 영향력과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면 전체의 삶에 긍정적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소위 말하는 참 존재인 성숙한 어른이 계시게 된다. 그러기에 우선 나를 닦으며 참 존재로 승화시키는 일이 급선무다. 그럼으로써 주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진리의 말은 흔하고 좋은 말과 가르침은 어디에나 널려있다. 그러나 말이 아닌 행동과 삶으로 표현하고 살아가는 참사람과 성숙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러기에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행동하는 사람이 필요하며 그런 실행의 결과가 진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거창한 무엇이 아니어도 좋고 작고 소박한 실천이어도 괜찮다. 작은 실천이 큰 실행으로 이어져 나갈 것이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읽었던 큰 바위 얼굴처럼, 어떤 큰 모델이 제시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따르려고 노력하게 된다. 작은 돌이 일으키는 파문이 동심원으로 이어지며 번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