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막내로 태어나다 보니 나는 할머니가 없었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모두 세상을 떠난 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이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는 모습을 보면, 항상 부러웠다. 할머니들은 어머니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야단도 치고 엄하게 대하며 훈육을 중하게 여기지만, 할머니는 그저 품어주고 달래주며 훨씬 더 너그럽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 어머니는 타고난 품성이 너그럽고 온화하며 사랑이 많은 분이셨다. 그런데도 할머니들의 태도와는 좀 다르게 느껴져서 난 할머니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할머니에 대한 인상은 친구 섭이 할머니였다. 섭이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했다. 그런 손녀를 위해 아침마다 책가방을 들어다 주며 우리와 같이 학교로 왔다. 수업이 다 끝날 때쯤 운동장을 바라보면 플라타너스 아래서 근심 어린 표정으로 우리 교실을 바라보고 계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손녀의 하교를 돕기 위해 오신 것이다. 소풍도 같이 가고 운동회도 함께 하고, 그리 넉넉잖은 살림에도 우리 반에 필요한 커튼과 주전자 등의 물건은 부조해 주셨고 우리에게도 섭이하고 잘 지내라며 사탕도 사주셨다. 할머니의 손녀에 대한 걱정과 애정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섭이는 누구보다 용감하고 씩씩하게 잘살고 있다. 그런 배경에는 할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이 큰 힘이 되고 있을 것이다.
영숙이 할머니는 바로 이웃에 살았다. 가난한 살림에 아이들은 많아서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할머니 치마폭에 싸여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그 많던 손자 손녀를 모두 끌어안고 머리도 빗겨주고 코도 닦아주며 다독이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래서 나도 할머니가 계시면 날 저렇게 이뻐해 주셨을 것 같아 많이 부러워했다. 가끔은 나도 영숙이 할머니 치마폭에 안기면 거친 손으로 내 얼굴을 만지고 쓰다듬어 주셨고 대접할 것이 이것밖에 없다며 고구마를 까주시기도 했다. 가난하지만 사랑이 부족하지는 않았기에 영숙이도 많은 사랑을 베풀며 살았다.
친정 오빠가 죽은 뒤 핏덩이를 버리고 도망간 올케를 대신해 조카 둘을 자기 아이들과 똑같이 잘 키웠다. 그리고 지금도 아들의 손자를 키우고 있다. 이런 가족에 대한 돌봄이 아마도 어릴 적 할머니로부터 받은 큰 사랑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러면서 개도 주워다 키우는 세상에 사람을 그것도 내 새끼나 진배없는 아이들을 왜 못 키우겠느냐며 되묻는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이상한 것이 할머니들은 자신의 삶이 없는 것 같았다. 손자 손녀를 돌보고 집안일과 농사일을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다른 삶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 어머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식들 키우고 할아버지와 아버지 수발 그리고 제사 챙기고 집안 건사하는 것으로 일생을 사신 것 같다.
왜 여성들은 자신의 삶이 없을까? 꿈도 많았을 것이고 세상 구경도 하고 싶었을 텐데... 모두가 남성의 보조 내지는 대리인으로 시댁 가계와 혈통을 유지하고 이어가는데 거의 모든 삶을 바치는 것 같아 좀 이상했다. 더구나 우리 어머니는 어릴 적 이화학당으로 가서 신여성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여성 모두의 권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남들은 겉보기로 부잣집 마나님으로 부러워했지만, 어머니는 만족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러면서 딸들은 다른 삶을 살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나도 직업을 갖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직업여성으로 살았다.
이제는 그 옛날 할머니들처럼 나도 할머니가 되었다. 가끔 생각해 보면, 나만을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온 것과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송두리째 희생하며 살아온 것 중 어느 삶이 더 나은 것인지 의문이 든다. 나는 내가 한 일을 좋아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해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중심이 되어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물론 내가 한 일이 다 사회적인 일이지만, 가족보다는 내가 우선이었다. 이렇게 한 것이 잘한 일 같지만 가끔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성은 사회적 약자로 둘 다를 만족스럽게 해내기엔 어려움이 많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여성의 도움과 희생이 필요하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은 남성도 마찬가지다. 가장이라는 짐이 너무 버거워서 피하며 차라리 자신이 원하는 취미생활을 즐기고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는 수가 늘어가고 있다.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뭔가 좀 씁쓸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모두가 자신의 삶을 중시하고 각자의 복지를 먼저 생각하다 보니 가족 간의 돌봄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복지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나부터 그런 선택을 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생각으로는 가족 간의 돌봄이 중요하고 숭고한 일이라고 여기지만 만약 나의 전문성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 삶이 우선이었지만 미안한 마음도 많았고 스스로도 이기적이라 생각했다.
시대마다 여성의 역할과 적응방식도 다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인가?’라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어느 길을 택하건 얼마나 만족하며 삶의 가치와 보람을 느끼며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과 직업이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 눈에 초라해 보이는 것도 만족하며 주변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진정으로 내 삶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내 삶에는 나 혼자만이 아닌 가족과 이웃도 포함한다. 그래서 주어진 여건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자기답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에게 이런 선택권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