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는 천국

by 최선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흔하게 들어온 말들이 있다. 그중에서 관심이 가는 말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있다.’였다. 하늘나라인 천국이 가까이 있다는데 왜 우리 삶에는 이런 고통과 괴로움이 많은지, 세상살이가 고해와 같은지 알 수 없다. 그렇게 가까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그런 천국을 경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 의문은 특히, 상담을 하면서 사람들이 많은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과 마주하면 더 절박해진다.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면 상황적으로 어쩔 수 없이 많은 짐을 지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런 고통이 자작극이고 스스로 만든 감옥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당사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또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도 없지만 그게 사실이다. 혼자만의 기대와 허상 그리고 자신이 만든 세상에 스스로 갇혀서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와주려고 하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단단한 방어벽과 합리화 그리고 지각적 왜곡이 동원되어 일종의 심리적 철옹성을 오랫동안 구축해왔기 때문이며 그것을 생명줄인 것처럼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다가 내가 먼저 지치면,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둔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고통을 즐기고 그런 속에서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것 같기도 하기에. 언제든지 본인이 그런 상황과 고통에서 벗어날 마음만 먹는다면 벗어날 수 있을 텐데도 그렇게 지내는 것을 보면... 물론 표면적인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본인도 어렴풋이 아는 것 같다. 그래서 지낼만하니까 그러고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내가 먼저 마음을 접어 버린다. 때가 되면 스스로 벗어나거나 다른 길을 찾을 테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침대에 누워서 스스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벌떡 일어나서 나와버리면 되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보면 천국은 정말 가까이 있는 것 같다. 자기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리면 바로 천국의 문이 열리며 평화와 광명의 길이 열리는데... 주변 가까운 사람에게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느껴진다. 한데 뒤 엉겨서 같이 고통을 겪을 이유가 없고, 차라리 다른 평화와 조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상담하다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속여오며 어떻게 말할지 엄청난 고민을 하던 어머니가 있었다. 그래서 정직하게 차분히 설명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혼자서 속고 있는 경우, 혼자서 괴로워한 경우, 혼자만의 생각 속에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편 경우 등등.

좀 더 심한 경우로는 자신의 실패나 불행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며 분을 참지 못하거나 원망 속에서 보내는 것을 보면 더 딱하다. 왜냐하면 가까운 누군가에게 탓을 돌리며 지속적인 원망의 화살을 던지며 괴롭힌다. 그러면서 당사자도 같은 괴로움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이 든 어르신들은 ‘운명, 복 아니면 전생의 죄’라는 말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지혜가 담긴 말이다. 저항하기보다는 일단 벌어진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고 남을 탓하지 않게 되면 우선 본인 마음이 편해지며 더 나아가서 지금이라도 복을 짓고 덕을 쌓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정말 당사자에게는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과 같다. 지옥 같은 전쟁을 멈출 수 있고 평화의 길이 열릴 수 있기에

이런 일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은 이기심과 욕심 아니면 허영에서 나온 고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비워야 산다고 하는 것 같다. 이기심과 욕심 그리고 나라는 아상에서 벗어나게 되면 바람같이 물같이 흘러가며 생명을 키우고 주변을 적셔줄 수 있을 텐데...

이런 의미에서 정말 천국은 가까이 있으며 잘 알지 못하는 도라는 것도 참 간단하고 쉽다. 멀리 잘 알지 못하는 모호함과 신기루 같은 환상을 따르기보다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하나라도 실천해 나간다면 도와 천국의 길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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