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by 최선화


한 해를 보내고 늦은 새해를 맞으며 마음먹고 대청소를 했다. 묵은 먼지와 찌꺼기들을 털어내어 새로움이 피어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조금만 방심해도 이렇게 잡동사니들이 쌓이는 것을 보면 사는 집만이 아니라 내 존재의 집도 깨끗하게 비워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집 안 구석구석에 쌓인 쓰레기와 먼지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기억과 상처들이 나이만큼이나 쌓여있기에, 이제는 다 털어버리고 그야말로 새해를 온전하게 맞이하고 싶었다.

청소에 몰두하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창밖의 나무는 새봄을 맞이하기 위해 잎을 다 털어버리고 저렇게 나목으로 한겨울을 버티고 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사람도 나무만큼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려는 결단과 인내심을 가진다면 세상은 더 조화롭고 평화로울 텐데. 나부터 본질이 아닌 것은 모두 털어버리고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껍데기들을 유감없이 털어버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진정한 자신이라는 존재로 한겨울을 맞으며 삶이라는 땅에 깊이 뿌리내리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청춘의 신열은 식어가고 온갖 헛것들은 뇌리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그래도 껌딱지같이 엉겨 붙은 삶의 부산물과 나를 붙잡고 있는 습관에서도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더는 나라는 존재가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기억의 창고나 거울이 아니라 하늘의 창으로 우주의 조화와 질서를 드러내는 맑고 투명한 창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의 중심을 존재에 두고 오래된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하나하나 흘려보내며 더는 붙잡지 말아야겠다.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미 오래된 이야기로 벌써 흘려버리고 떠나보냈어야 하는 것을, 아직도 붙들고 괴로워하는 미련과 어리석음을 마주하게 된다.

옛날 그때 그 시절에 아직도 묶여 해방되지 못한 볼모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구속이 육체적 볼모 못지않다. 아니면 그것이 자신의 부족과 실패에 대한 변명거리가 되기에 일부러 과장해서 더 잡아두고 살려두는 것 같기도 하다.

지혜로운 자는 그런 부족과 아픔을 딛고 홀연히 일어선 반면 어리석은 이는 끝까지 자신을 속박하는 족쇄로 만들고 있다. 이런 어리석음을 나부터 털어버려야 한다. 지난 것은 지나간 대로 나를 키워준 밑거름 역할을 다했다. 그러니 이제는 떠나보내야 한다, 미련 없이. 과거에 묶여 지금을 살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큰 낭비인가! 그러니 주어진 매 순간에 충실히 깨어있으며 그럼으로써 매 순간의 축복을 누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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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이렇게 삶의 순간이 새롭게 주어진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그러니 후회나 미련, 기억 등의 잡다한 것들로 낭비하기엔 너무 값지다. 노년기가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것이나 후회로 채워진다면 삶이 얼마나 무력해질까? 아니면 지나간 위세와 무용담으로 호기를 부려본들 얼마나 초라하고 허망해질까?

그보다는 지금 살아있기에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긴 세월을 충실히 살아온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품격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삶에 대한 이해와 감사 그리고 너그러움 같은 품성은 노년기를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채워나갈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껏 미루어둔 숙제를 더는 미룰 수 없어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것도, 내 삶을 정리하고 영혼의 가벼움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이제는 세상사의 번잡함과 생존을 위한 다툼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영혼의 고요와 자유를 회복하고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생명과 진리와 사랑의 싹을 키우고 가꾸어 나갈 여유를 회복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마도 지금까지의 삶은 바로 이런 순간의 수확을 위한 정지작업이었다는 생각조차 든다. 그래서 지금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내적인 고요함이 내 생애 최고의 선물로 여겨진다. 지금 이런 고요한 축복 속에서 매 순간 새로운 삶을 이어나가며 모두를 위한 축복으로 전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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