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

by 최선화


장 지글러는 대학교수와 U.N 식량권 특별 보좌관과 인권위원으로 활동한 사람이다. 그는 젊은 시절 스위스에 온 체 게바라를 며칠 동안 우연히 수행하게 되었다. 차 안에서 그와 나눈 대화를 통해 체에게 감화되어 함께 남미로 가서 투쟁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체가 그를 호텔 옥상으로 데려가서 시내를 내려다보며 ‘네가 있을 곳은 여기’라며 떠났다고 한다. 체와의 짧은 만남이 장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다. 그는 어디서건 대학, 연구소 그리고 빈곤 국가 어디서나 혁명과 투쟁을 외치며 의식의 혁명과 투쟁만이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인간의 길이라고 한다.

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 사람이 뇌리를 스쳤다. 외가인 김원봉이다. 그도 독립투쟁과 민족을 위해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남겨진 가족과 그 일족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설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이들 가족의 뒷바라지를 우리 부모님이 하셨다. 어머니는 가족으로 차마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고 아버지는 재력으로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돌보았다. 나는 이런 가족을 지켜보며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 어린 이야기를 자주 들으며 자랐다.

어린 마음에 가족에게 저렇게 큰 고통을 남기는 투쟁이 과연 잘한 일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저렇게 피와 눈물을 요구하지 않는 무슨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는 그래서 모두를 구하고 살리는 좀 더 고상하고 우아한 방법이 꼭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사회학과 사회복지를 공부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영국에서 영성 집단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이것이 바로 내가 그렇게 갈구하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선은 내가 먼저 변화를 겪었고 가족 모두가 느낄 만큼 건강하고 성숙해졌다. 그리고 이 길만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투쟁을 요구하지 않는 조용한 진정한 혁명이라 여겼다.

2000년 전 예수라는 걸출한 한 인물만이 아니라 모두가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최고의 이상과 비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며 새로운 변화와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따라온 구도의 길은 그리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따라가는 가운데 먼저 내 속에 진정한 평화와 믿음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사회적인 책무에서 벗어난 지금은 오롯이 여기에 몰두하며 집중하고 있다. 그러면서 진정한 사람의 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 본다. 장 지글러는 빈곤과 부조리 그리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인간다운 길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렇다. 세계 인구 모두가 먹을 수 있는 식량의 2배를 가지고서도 사하라 이남과 빈곤국에서는 비참하고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부조리와 정의롭지 못한 상황 앞에서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그래서 각자는 각각의 방법을 제시하며 장은 민중의 봉기와 의식의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의식의 봉기와 혁명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는 생각과 접근에 차이가 있다.

아직도 나는 피를 흘리지 않고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이룰 수 있는 참다운 의식의 혁명을 꿈꾸고 있다. 미움은 또 다른 미움을 가져오며 전염성이 코로나보다 더 강하다. 그런 미움과 불의를 나부터 멈추어야 하며 대신 서로에 대한 자비와 돌봄의 정신을 나누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진정한 평화와 정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여긴다.

문제가 만들어진 수준에서 다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결국 진흙탕 싸움으로 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기보다는 문제가 없는 차원에서 바라보게 되면 새롭게 눈 뜨게 되며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지금까지 되풀이되어 온 역사를 반복하기보다는 진정한 의식의 전환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타인을 선동하기 전에 우선 나부터 평화와 정의와 자비가 넘치는 의식으로 채워짐으로써 내 주변부터 그런 변화를 배워나가며 평화의 파동이 물결처럼 퍼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남겨진 가족의 설움과 어려움을 눈물로 돌보았고 아버지는 묵묵히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셨다. 일제와 맞서기 위해 총을 드는 대신 당신들이 그곳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가족을 돌보셨다. 다국적 기업이나 거대 권력과 투쟁하다 좌절하고 희생되기보다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근본적인 의식의 혁명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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