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직면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결국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어렵다고들 한다. 내 경험도 그랬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나에 대한 오해와 곡해 아니면 상대방으로부터의 비방과 모함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고 다양한 관계망과 이해관계 속에 놓이다 보니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이 여러 형태로 내게도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은 그런 일과는 전혀 무관하게 순결하게만 살아온 것도 아니다. 타인에 대해서 크게 관여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래도 알게 또는 모르게 그런 일에 관련된 것을 발견하고서 놀라기도 했다. 이런 뒤섞임 속에서 상처를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해 나올 수 있었다.
대부분은 기억도 다 못하고, 기억해도 웃으며 털어버릴 수 있지만 그래도 아직도 앙금 내지 상처로 남아있는 일들도 더러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깊이 생각해보면 바로 그렇게 심하게 아팠고 상처받았던 일들이 나에게 큰 깨우침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일들은 대부분 내 인식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들이어서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벌어지면 나로서는 일종의 충격을 받게 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내가 인간사에서 중요한 무엇을 모르고 있었거나 아니면 간과했기에 벌어진 일들이었고 그런 일 덕분에 이해하고 성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좁은 식견과 생각 속에서 지내다 엉뚱한 일을 당해 보고서야 비로소 조금 눈을 뜨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비록 그렇게 눈을 뜨는 것이 세속적이고 세상에 물들어 가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의 좁음과 편견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의미에서는 가치 있다고 여겨졌다.
내가 어려움을 겪은 일 중 하나는 타인의 잘못을 그대로 두고 보거나 용납하는 일이다. 저렇게 잘못된 일은 그냥 두지 말아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아이나 다른 사람을 해코지 하는 사람을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대들거나 고치려 들다가 사달이 나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 안 된다고 여겼고 그러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 여기며 내가 단죄하러 들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옳음과 정의감만 생각했지, 다른 사람들이 가진 상처나 아픔 내지 열등감을 이해하고 감싸주지 못한 우를 범했다. 그들 편에서 생각해보면 그러는 내가 얄미웠을 수도 있다. 모두가 나처럼 당당하고 자신감이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닌 넉넉지 못한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본인도 알지만 다른 방법을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더욱이, 그런 식으로 도와달라는 구원의 몸짓에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이런 일들을 여유와 웃음으로 털어버릴 수 있다. 그러니 그 모두는 나의 부족과 자만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뉘우치게 된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 전문직에 종사하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당사자를 위한 가장 나은 선택을 도와주며 이해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보면 최악의 길을 선택한 것을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배신감마저 느꼈다.
그런 일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당사자 편에서는 그것이 최고의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모르는 당사자만의 고민이 있을 수 있고 나에게 다 말하지 않은 어떤 무엇이 있을 수도 있고, 자신감 부족 내지는 열등의식이나 본인이 생각하기에 중요한 다른 무엇이 있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사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당사자의 선택을 수용하고 존중하는 것뿐이다.
이런 일은 전문적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편에서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당사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수용해야만 하는 일들이 일상에서 흔하게 벌어진다. 그럴 때 나로서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믿고 존중해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깊이 생각해보면 나의 충고가 정말 옳았는지도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아마 우리 부모님이나 가족들도 나에게 이런 비슷한 마음을 무수히도 많이 먹으며 자신들을 다독여 나왔을 것이다. 살면서 실수나 실패를 피할 수 없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때로는 과도한 수업료를 내는 일도 많았고 때로는 금방 후회하는 일도 많았다. 그래도 그렇게 경험해봤기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한번 해보도록 내버려 둠으로써 스스로 배우고 깨달을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주변 모두의 인내와 자비심으로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음에도, 그 모두를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탓하고 불평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참 부끄러워진다. 나의 부족함과 우둔함에도 한결같이 믿어주고 지켜보며 인내해준 분들에게 이제야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