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위한 용서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 중에는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큰 상처를 받은 사람도 있고 또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 사람도 있다. 대부분은 피해자들이지만 간혹 가해자도 스스로 느끼는 자괴감을 견디기 힘들어하며 상담받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경우이건 간에 지난 일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통한 벗어남이 필요한 경우이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에는 용서의 날이 있다고 한다. 어느 화창한 날을 택해서 죄를 지은 사람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고 한다.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도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해서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고백하고 인정하며 용서를 구함으로써, 남아프리카의 고질적인 흑백차별도 사라지고 화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유태교의 율법 중에도 희년 제도가 있다. 50년마다 돌아오는 것으로 희년이 되면 그동안의 죄와 빚 등 모든 억압과 계약이 모두 본래대로 돌아가고 무효가 되며 노예도 해방됨으로써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제도며 모두를 살리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다.
용서라고 하면 용서받는 사람이 혜택을 누릴 것 같지만 사실 용서해주는 편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마음에 앙금을 지녀보라. 스스로의 삶에 큰 손상을 입게 되어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그 모든 짐에서 벗어나는 길은 용서하며 화해하는 것으로, 마음의 부담에서 벗어나서 털어버리게 된다.
우리말에도 ‘원수는 다른 사람이 갚아주고 복은 자신이 누린다’는 말이 있다. 지혜가 담긴 말이다. 내가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남으로써 짐을 내려놓게 된다. 중국 무술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집안의 원수를 갚고 복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떤가? 모두의 죽음으로 끝나고 원수를 갚았다고 해도 결과는 처참하지 않은가? 그다음은 또 다른 복수극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삶의 낭비인가? 차라리 그 모든 악의 사슬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버리는 것은 어떤가?
그래서 성경에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사랑하기까지는 힘이 든다면 적어도 용서하고 털어버리는 것만이 살길이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감정이 상하고 오해받고 큰 손해를 입는 일도 생긴다. 손해를 당한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기가 쉽다. 그러나 손해를 입힌 사람은 다른 것은 다 그렇다 치더라도 스스로의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사람도 스스로를 용서하고 개과천선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이고 선택이지 피해를 당한 사람이 관여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큰 죄를 지은 사람이 몇 해를 피해 다니다 결국 잡히는 순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차라리 홀가분하다.’며 담담하게 따라가던 모습을 보았다. 도망 중에 겪었을 심리적 불안과 공포감을 생각하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살인을 했는데도 다른 사람이 잡혔다는 소식에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지만 결국에는 양심의 가책과 악몽에 시달리다 스스로 자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죗값을 다 치르고 나니 이제야 마음 편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죄를 지은 사람은 다 잊어버리고 편히 사는 것 같아도 결코 그럴 수 없다. 우리말에 ‘맞은 사람은 발 뻗고 편히 자도 때린 사람은 잘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처지에서 살아가건 스스로에 대해서 자부심과 자신의 삶에 대한 당당함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커다란 울분이나 수치심 또는 죄의식 등과 같은 숨겨진 보따리가 없어야 한다. 남들이 모르는 것 같지만 정확한 내용은 몰라도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냄새는 맡을 수 있다. 크게 용서한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너그럽게 살아간다. 그래서 삶의 과정에서 생겨난 잡동사니들을 털어버림으로써, 부끄럽지 않고 주눅 들지 않으며 추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소유가 아닌 존재적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사람 간의 갈등이 생기는 근본 요인 중 하나로 돈을 꼽을 수 있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이 가지는 것이 모두인 양 착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서 없이 살아도 마음 편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서 당당할 수 있을 만큼의 삶을 살아내야 만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며 특권이다. 이러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겉치레로 흉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 자신의 삶에 따라서, 존재의 질에 의해서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