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문외한에 불과한 나의 짧은 식견으로 보면, 안도 다다오는 빛의 건축가다. 그가 처음 설계한 집도,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빛의 교회’도 그렇다. ‘물의 교회’도 결국은 자연과의 교감과 소통이라는 면에서 같은 반열에 속한다. 파리의 전시관도 나오시마 현대미술관도 다 자연광선과 빛이라는 점에서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이렇게 외부의 빛, 자연의 빛을 인간의 공간 속으로 끌어들이던 그가 마침내 빛은 외부인 자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가 건강상의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때, 그는 자신 속에서 희망의 빛과 자유 그리고 풍요의 정신이라는 빛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빛을 이어가기 위해서 어린이들에게 꿈과 상상력을 일깨워줄 책을 선물하기 위해서 어린이 도서관 설립에 몰두하고 있다.
책은 전문 교육이 부족한 그에게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었고 전 세계의 다양한 건축물과 다양한 경험을 선물했다. 그는 대학교육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 소위 말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을 통해서 필요한 전문지식을 스스로 압축적으로 익혀나갔다. 그래서 아이들이 지구적 존재로 창의성과 자유 그리고 풍요의 정신을 기를 수 있는 도서관을 남기기로 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들이 다음 세대에도 세상의 빛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빛의 교회를 처음 건축했을 때 그는 십자가에 유리를 넣지 않으려 했다, 자연광선이 교회 전체로 들어올 수 있도록. 그러나 많은 반대에 부딪혀서 지금은 유리를 끼워 넣었지만 언젠가는 제거하기를 원한다. 판테온의 천정처럼 빛이 바로 들어올 수 있고 외부와 순환할 수 있도록. 그러나 교인들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울 것이라며 관리상의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
그렇지만 그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게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사람들은 인공적인 조작으로 덥지도 춥지도 않게 만들고 있다. 인공조명이 없는 미술관도 오후에는 빛이 부족해서 감상이 어렵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불편하고 원시적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그렇게 자연의 질서에 맞게 사는 게 더 합당하다고 여겨진다. 이처럼 자연의 빛보다는 인공조명 그리고 인조 조명이 진정한 빛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진짜 빛은 더 잊히고 사라지며 가짜가 진짜를 퇴출하고 있다.
인간이 물질적 존재만이 아니라 빛의 존재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냥 좋은 말로 여겼다. 그러나 그 빛이 물리적인 것을 말하는지 아니면 어떤 것인지, 소금이 되는 어떤 것인지, 잘 몰랐음에도 대충 세상에 도움이 되는 존재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인간 안에 빛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동물이나 기계나 AI와 무엇이 다를까? 연구에 의하면 동물에게도 모성과 가족애 등 그들 나름의 정신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딥러닝을 통해서 AI도 이제는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빛은 무엇이며 그 의미가 무엇인가? 여기서 우주관이나 종교관을 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이 안도 다다오가 찾은 보잘것없는 학력에서 찾은 용기의 빛, 지속적인 암과의 투쟁에서 찾은 희망의 빛 그리고 지구 전체의 삶과 복지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나눔과 풍요의 정신 그 모두가 그 사람 속에서 찾은 빛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누구나 다 자신의 삶에서 요구되는 새 희망과 용기 그리고 새로운 상상과 탐험이라는 빛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빛의 존재이기에 그리고 그 빛이 우리의 생명으로, 삶을 이어가는 근본 동력이기에.
오늘 내가 찾고 실현한 빛은 기다리던 봄비에 대한 감사의 빛과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나눔의 빛이다. 그리고 평온한 저녁을 맞이할 수 있는 이 평화와 풍요에 대한 감사와 책임감이라는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