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한 닢
누구나 가슴속에는 자신이 소중한 존재며 고귀한 무엇이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이 고요함 속에서 스스로에 대해서 느끼는 이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본질에 대한 기억이며 비록 세속적인 삶에 찌든 사람일지라도 가슴속에 아직도 온전히 보존된 본질이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그런 자신만의 비밀을 가슴에 묻어두고 지낼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보여줌으로써 본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린 자세로 도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세파에 시달리고 밟혀서 더럽혀지고 쭈그러진 동전 한 닢도 갈고닦으면 원래대로 반짝반짝 빛날 수 있듯이 우리 존재의 본모습도 마침내 그렇게 본래의 모습으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도를 닦는다, 또는 닦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사람이 살아가야 할 길인 도는 이미 존재하기에 그 도를 닦아서 밝히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는 무엇이며 그리고 그 도를 닦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것인가?
닦는다는 것은 보통 더러워진 것을 청소하며 정화한다는 의미와 훈련을 통한 수련 및 수행 그리고 본래의 모습을 찾아내서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원리를 적용해보면 사람이 살아갈 길인 도는 이미 존재한다. 그 도는 생명체 속에 그 사람에 대한 하늘의 계획이 내재되어있어 창조적 과정에 따라서 펼쳐질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그것은 마치 한 톨의 씨앗에는 그 나무에 관한 모든 설계와 밑그림이 들어있는 것과 같다.
과학적으로는 유전자에 대한 모든 정보가 내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땅에 심은 씨앗은 비와 바람 그리고 태양이라는 자연의 요소와 결합해서 꽃피고 열매 맺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이미 우리 생명체 속에 심어진 초안대로 창조적 과정을 따라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펼치는 과정인 삶은 우리 안에 있는 본질을 드러내고 그 특성대로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닦고 정화해 나가야 하는가? 인간의 세속적 욕망에 찌든 마음과 영혼을 청소해 내고 정화해 나가야 한다. 이런 정화과정은 태어나서부터 경험한 모든 기억뿐만 아니라 심리학자 융이 말하는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있는 기억까지 포함하기에 쉼 없이 이어나가야 할 과업이다. 매일 집안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이 우리의 의식도 지속적인 정화작업이 요구된다.
닦고 훈련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다른 자연계와 달리 인간에게는 성장 과정에서 나라는 자의식이 생겨 자신의 의지대로 해보려는 욕망 때문에 원래 만들어진 도안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려는 헛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자의식으로부터 마음의 중심을 다잡을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아버지의 집을 떠난 탕자에 비유하고 있다. 탕자는 세상을 유랑하며 자기 맘먹은 대로 살다가 세상살이에 지쳐간다. 그러기에 닦고 훈련해야 하는 것은 잡초처럼 끈질긴 자의식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수행을 통해서 마음을 다스리고 훈련함으로써 자의식에서 벗어나서 지음 받은 본래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자의식이 발동하는 이유는 인간이 본래 어떻게 만들어진 존재인가를 모르거나 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삶에 지쳐 마침내 근본인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의 집은 우주의 원리대로 또는 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생명 본래의 근원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주의 원리가 우리 속에 신성으로 심겨있고 그 신성이 근원적 우주의 힘과 합해져서 더 큰 창조적 과정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인간이 이 땅에 온 목적이다. 이런 방식의 삶의 길과 생명의 길을 보여준 예가 예수로 그는 사람이 살아나갈 길을 몸소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본보기로 보여주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는 신의 아들이기에 가능하며 보통사람에 불과한 우리들은 그를 예배하고 경배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특별한 존재인 예수에게만 신성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는 신적 요소인 신성이 각자의 그릇에 따라 내재되어 있다. 단지 예수와 부처는 그것을 드러내고 삶에서 보여준 존재이고, 범인들은 자의식에 빠져 신성과 불성을 망각하고 사장시키고 있을 뿐이다. 그러고서 사람을 단지 세속적 속성을 가진 존재라 항변하며 인간이 지닌 신성을 모욕하고 있다.
우리 존재의 본모습인 신성을 회복하게 되면 우리 속에 심어진 우주의 힘과 근원적인 힘이 서로 융합해서 조화를 이루어 천국을 바로 이 땅에 이루어 나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는 출발점은 바로 내가 누구며 어떤 존재인가를 바로 인식하고 아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근본인 도를 인식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본인이 신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신성을 가진 존재들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하는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모두 우리가 진정으로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위해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아무리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가슴속 어디엔가는 자신이 그래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사람과 여건만 주어졌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안타까워한다. 비록 다른 누구에게도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본인 속으로는 분명 알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본질이 신성하며 살아있는 한 그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본질에서 벗어난 삶을 살게 되면 스스로 공허함과 허무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스스로가 진정으로 어떤 존재인가를 드러내고 증명할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지금 가슴속의 열망과 염원을 직시하며 하찮은 것들을 툴툴 털어버리고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면 지금이 바로 내 삶의 신성한 전환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