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쉼을

by 최선화

상담실에 들어오는 여성의 표정을 보니 얼굴은 스트레스로 벌겋게 달아올라 익어있고 눈에는 이미 눈물을 한가득 머금고 있었다. 뭔가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과 스트레스에 지쳐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이를 키우며 가사도 하고 그러면서 전문직에 종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중고 삼중고를 겪기 때문이다. 육아와 가사 그리고 직장 일에다 전문직을 위한 학업에 대한 부담 어느 하나도 소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인간관계는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요구가 많고 부담을 주는지... 옛날 노비나 노예도 이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조차 든다. 이런 상황에 신체적 어려움이나 개인적인 자신감 부족 아니면 가족의 문제가 겹치게 되면 항우장사라도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요즘은 남성도 육아에 참여하며 가사도 많이 돕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보조에 불과하다. 그러니 또 다른 여성이 이들을 돕지 않는 한 이곳저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며 당사자도 만신창이가 되어 지쳐가고 있다. 사는 것이 하루하루 전쟁과도 같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런 속에서 그만하면 잘 버텨냈다고, 할 만큼 했다며 위로하고 다독이게 된다. 실컷 울라고 울고 나면 좀 시원해질 거라며. 이런 상황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대상도 찾기 어렵고 아무한테나 말할 수도 없어 더 힘들다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나도 내 얘기를 다 털어놓고 안전하게 말할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값싼 충고도 듣고 싶지 않고, 너만 유별나다는 소리도 기분 나쁘고, 더 흥분해서 본인 얘기로 열 올리는 사람도 귀찮고.. 말이 잘못 나갔다가는 분란만 일으키고... 이래저래 혼자서 속만 끓이다 보니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비슷한 어려움에 부딪힌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경제적 상황조차 녹록지 않다 보니 특히 젊은이들이 더 버거워하고 있다.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용기와 희망을 줄 묘수는 무엇일까? 이렇게 힘든 순간에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며 아무런 비판이나 판단 없이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될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부족과 무능을 가장 먼저 탓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모자람이 있게 마련이며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도 한계치를 벗어난 무리다. 그래서 어려움에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며 다독여주는 것, 값싼 충고로 자존심 상하게 하지 않고 함께해 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 본인이 숨 쉴 수 있는 작은 여지를 하나라도 찾아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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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지쳤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학교 뒤 산속으로 들어가서 계곡물소리만 들으며 몇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맑은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온갖 잡념에서 벗어나서 내 몸에 피가 다시 도는 것 같았다. 어려움에 부딪히면, 다른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먼저 자신을 더 괴롭히며 무능과 죄책감, 후회 등 온갖 질책으로 더 무너져 간다. 이런 내적인 비판의 소리에서 벗어나서 나를 먼저 회복해야만 상황을 수용하고 할 일을 찾아가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물소리와 새소리는 나를 기운 차리게 했고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래서 산에서 내려올 때는 아주 작은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무시할 것은 무시하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상식적인 일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때 나에게는 식사 잘 챙겨 먹고 잠도 충분히 자며 힘들면 혼자 조용한 찻집에 가서라도 좀 쉬었다 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힘들고 급할수록 돌아가자. 이럴 땐 어떤 단정도 결정도 하지 말고 그냥 믿고 열어두자.’ 그렇게 스스로 인내심을 가지고 일부러 돌아서 갈 마음으로 차분히 임했을 때, 내 속을 끓이고 나를 들볶아 지치게 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서 세월이 해결해 주도록 믿고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