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대불

by 최선화


청마 유치환은 그의 시 ‘석굴암 대불’을 이렇게 시작한다.

‘목 놓아 터뜨리고 싶은 통곡을 견디고 내 여기 한 개 돌로 눈감고 섰노니’

그가 목놓아 통곡하고 싶은 사연은 무엇일까? 게다가 시를 접한 내가 격하게 공감하는 연유는 또 무엇일까? 이러한 이유를 개인적인 인간사에서 찾기보다는 더 깊은 인류가 지닌 집단 무의식과 현상 세계에서의 중생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찾는 게 더 타당할 것 같다.

지구 상에 전쟁과 굶주림 그리고 고통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그런 속에서 살아왔기에 인류 모두의 집단 무의식에는 두려움과 공포라는 상처가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러기에 이유도 없이 치밀어 오르는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곤 한다. 개인적으로도 그리 험한 경험이 많지 않았음에도, 때로는 목놓아 통곡하고 싶은 심정과 걷잡을 수 없는 폭풍우가 치밀어 올 때가 있다.

부처가 통곡하고 싶은 마음은 그보다 더 깊은 인간의 생사고락과 윤회의 사슬이라는 고뇌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느끼는 연민과 측은지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부처에 빗댄 시인의 마음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그런 누구나 경험하는 비장한 심정 모두를 넘어서 그것이 너무나 엄청나서 견딜 수 없기에, 차라리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꿈쩍 않는 돌이 되어 눈감고 섰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맺고 있다.

‘뉘라 알랴! 하마도 터지려는 통곡을 못내 견디고 내 여기 한 개 돌로 적적히 눈감고 가부좌하였으니’

끓어오르는 감정 모두를 뒤로하고 벗어나서 고요히 눈감고 가부좌를 통해서 생사고락을 초월한 해탈과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이런 모습, 세상과 삶이라는 진흙 속에서도 고고히 한 송이 연꽃으로 피어난 석굴암 대불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참모습이며 우리 앞에 제시된 구원의 길이 아니겠는가?


이 시는 특히 우리 민족이 가지는 깊은 한의 정서를 직설적이며 가감 없이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세속적이고 천박하기보다는 품위와 강한 위엄을 느끼게 한다, 마치 진흙탕 속의 한 송이 연꽃처럼. 그리고 세상사의 혼란과 혼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내적 강인함으로 그 모든 희로애락을 초월해서 극락정토에로의 길을 열어준다. 이런 정서가 우리 민족만의 경험은 아니겠지만 슬픔과 아픔, 분노마저도 넘어서 고요히 길을 찾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고 친숙하게조차 느껴진다.

삶에서 이런 초월과 해탈의 해방구가 없다면 얼마나 삶이 돌덩이처럼 무겁고 각박할까? 진흙탕 속에서도 더럽혀지지 않을 만큼의 저력과 해학으로 어려운 순간의 슬픔마저도 노래와 춤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여유와 믿음이 우리 삶을 지켜온 저력이 아닐까?


석굴암 대불은 우리 모두의 자부심이며 자존심이다. 그러기에 타민족이나 타 문화에서도 가장 탐내는 우리 문화유산이다. 돌조각을 통해서 드러나는 우리 얼과 우리 삶의 초월적 모습이 고귀하고 숭고하기에 모두가 탐내는 것 아닐까? 하나의 돌로 드러나는 우리의 얼과 꼴이 생명의 비밀인 영생과 구원의 길을 저리도 따뜻하고 친근하며 부드럽게 열어 보이기에. 비장함으로 시작된 구도의 길이 마침내 열반에 이르러서야 다시 온기를 찾고 녹아들어 평상심으로 돌아온 것일까?

그래, 그러니 석굴암 대불처럼 섣불리 호들갑 떨 것 없이 털고 일어나 고요히 눈감고 정좌하면, 새길이 열리고 새 빛이 들어오며 새 세상이 열리리니. 그곳에선 모두가 선남선녀가 되어 통곡 아닌 환희의 노래로 아픔도 슬픔도 모두 잊고 서로를 생불로 맞이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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