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말, 말

by 최선화

요즘은 선거철이다 보니 온갖 말들이 많다. 실행이 어려울 것 같은 공약도 앞다투어 내놓고 상대에 대한 비방도 거침이 없다. 그야말로 저급한 코미디 같은 아무 말 잔치가 벌어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제는 대부분이 휴대전화기를 소지하고 있기에 언제 누가 내 말을 녹음해서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살벌한 세상에서도 정치인들의 말은 제동장치가 고장 난 자동차 같이 질주하는 것을 보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이런 말들은 선거철만 끝나면 그만이지만,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말로 인해 상처를 입기도 하고 관계에 손상이 가기도 한다. 말하는 사람은 별생각 없이 한 말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앙금을 남기기도 한다. 내 경험으로 보면 말로 상처받는 이유가 타인이 나를 특정한 틀 속에 가두어버리고 구속하는 불쾌감 때문이다. 인간은 변하며 자연스럽게 성숙해지는 존재인데 그런 여유를 충분히 주지 않고 틀 속에 집어넣는 것은, 엄청난 정신적 구속이며 인격의 침해로까지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대할 때 과거 어느 시점에서 일어났던 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이미 지난 일로 현재와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과거의 잘 맞지도 않은 틀로 가두고 붙잡아두려는 태도는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기에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나 새롭고 신선하게 지금 여기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야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내 눈에 따라 타인을 다르게 규정하기에 내 눈부터 먼저 밝히고 닦는 것이 우선이다. 부처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부처지만 돼지의 눈에는 모두가 돼지로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 전에 내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이 먼저 요구된다.

이렇게 세상에서 참 어려운 것이 말이지만, 그런데도 함부로 말하다 큰 화를 당하기도 한다. 세 치 혀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니 더욱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상대방에 대해서 위로와 위안을 전하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이 아니면 신중하게 생각해서 말을 솎아서 고르고 골라서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뜻에서 한 말이라도 상대에게 왜곡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신중해진다.

이렇게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말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기에 함부로 말하기보다는 침묵을 택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할 말은 하며 살아야 하기에 말을 고르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말 수가 줄어들게 된다. 그 사람의 말이 말하는 사람의 인격과 수양의 정도를 나타내기에 더욱 그렇다.

내가 지치고 넘어졌을 때 큰 힘이 된 것은, 아무 말 없이 함께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아마 그들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오랜 시간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말도 그 당시에는 나에게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함께하는 것만이 위로가 되었고 섣부른 말이나 값싼 충고보다 따뜻한 눈빛이 더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판단하기보다는 진심으로 정직하게 말해주는 것이 나를 깨닫게 만들고 나의 맹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꼭 극한 상황이 아니어도 상대에게 넓은 공간을 허락하며 숨 쉴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넉넉한 자세로 대하는 태도가 사람을 살리고 키우며 관계를 풍요롭게 한다. 반면에 상대방을 일정한 틀에 가두어버리고 마음대로 규정하고 단정하는 태도는 질식할 것 같이 숨이 막히며 그런 관계는 성장이 아니라 독이 되기도 한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나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선생이나 부모의 말 한마디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들의 속마음을 들어보면 세상의 부모나 선생들은 모두 죄인같이 느껴지며 그런 부족한 사람들 밑에서도 장애물들을 딛고 잘 자라난 아이들이 대견하고 고맙기만 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다 약한 구석과 예민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두루 살피며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대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쉽고 명료하게 말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권위를 내세워 어렵게 전문용어를 사용해가며 장황하게 떠벌린다.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하기엔 자존심이 상하기에 온갖 미사여구와 전문용어로 치장해서 더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6살 아이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다면 진짜로 아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진짜로 아는 게 아니라면 아는 체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정직하게 잘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정직함과 용기가 요구된다. 그것도 아니라면 조용히 입을 닫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알아보고 배우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약간 재미있는 예를 들어보자.

어느 퇴역 장군이 10대 여학생들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교회학교에서 10대 여학생들을 맡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말을 듣지 않아서’라고 했다. 여학생 3-4명을 놓고 얘기를 하는데 아이들이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장군이었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그래서요?’라며 빤히 쳐다보더라는 것이다. 군대에서 수 백 명의 부하들을 호령하던 얘길 했더니 또 ‘그래서요?’라며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는 것이다. 듣고 있던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이런 글을 쓰면서도 내가 이제껏 함부로 내뱉은 말들을 생각하며 그런 말이 어디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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