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는, 겸양과 겸손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이 말은 내 주위를 스치듯 지나갔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초점이 되고 있다. 물론 계기가 있었다. 능력주의에 대한 강의를 듣고부터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내가 가진 능력과 재화 모두가 과연 당연하고, 정말 내 것인지를 다시 고려해 보게 되었다. 당연히 이러한 것에 대한 책임감을 의식하며 살아온 사람이지만 이제는 다른 깊이와 무게로 다가오고 있다.
우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얼마나 겸손하고 다른 사람 모두를 존중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남을 속이거나 내 이익을 얻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려고 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최선을 다해 경청하고 편견 없이 대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그보다는 다른 사람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단정하거나 비판한 일이 가장 큰 잘못이라 생각된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내 나름의 기준이 있고 그에 따른 분별심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내 중심을 지키려는 태도와 다른 사람을 그 기준으로 판단하고 단정하는 것은 다르다. 그러기에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나의 잣대를 들이댄 것은 깊이 반성하는 부분이다. 이런 태도야말로 가장 건방지고 교만한 태도 아닌가? 조금 심하게 말하면 모두에게 나를 따르라고 내가 기준이고 표준이라고 주장하고 독려하는 것과 진배없는 엄청난 폭력,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폭행이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대신 그런 굴레로부터 나부터 벗어나는 것이 요구된다. 그럼으로써 다른 이들에게도 새로운 길을 제시해줄 수 있지 않을까? 주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도 나는 나의 진실을 지켜나갈 수 있어야 진정한 성숙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마치 공기가 부족해서 허덕이는 속에서 공기구멍처럼 숨 쉴 틈으로 산소를 공급해주는 일과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모두가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길을 찾고 있고 산소만큼이나 필수적인 생존을 위한 요소로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바른길과 생명의 길을 찾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살아오면서 큰 울림을 얻고 감동했던 순간은 말하는 사람이 정직하고 솔직한 태도로 자신을 드러냈을 때 그리고 그 사람 스스로가 그런 존재가 되어 말하거나 행동했을 때였다. 타인을 비난하거나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자신이 되는 모습이 큰 감동을 주었다. 이렇게 존재의 진실을 간결하고 소박하게 드러내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았다.
사람들 대부분이 하는 행동은 누구를 비난하거나 칭찬 아니면 알랑거리며 비위를 맞추려 들거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을 추켜세우거나 열등의식에 빠져 있거나.. 이 어느 것도 아닌 스스로 자신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은 찾기가 어려웠다. 당당하다고 하는 사람도 진정한 존재에 대한 확신보다는 어떤 생각이나 이념에 빠져서 편견과 편협한 태도로 우월감 내지는 방어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진정한 겸손과 겸양은 나를 존중하기에 타인도 존중하면서 모두가 스스로 자신으로 존재하는 태도로, 다른 사람에 대한 무의식적 억압이나 굴종 아니면 저항을 벗어나서 스스로가 되어 존재하며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도의 길을 가고 있거나 아니면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을 지녀야 가능할 것이다.
지나친 겸손이 도리어 오만함을 드러내고 형식적인 겸양이 오히려 거짓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의 중심을 유지하는 중도와 중용이 그래서 참 어렵게 된다. 그러나 이 모두에 앞서 삶에 대한 진솔한 자세와 모두로부터 배우려는 열린 태도가 먼저인 것 같다. 세상을 살면서 이런저런 편견을 가지기 쉽고 내 감정과 타인의 태도에 의해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며 자신의 진실을 솔직하고 편안하게 드러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내적인 나의 신성을 드러내고 그곳에 뿌리를 둘 때 모두와 넉넉한 자세로 만날 수 있고, 하나 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