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 이야기

by 최선화


평생 강의를 해오던 사람이 이제는 다른 사람의 강의를 흥미롭게 듣고 있다. 그러면서 많은 점을 반성하며 새롭게 배워 가고 있다. 마침 공영방송에서 세계적인 대가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여기에 더해서 국내의 훌륭한 강의도 열심히 듣고 있다.

그중 흥미롭게 듣고 생각해 본 강의는 저명하신 정진홍 교수님의 신(God)에 대한 강의다. 평생을 종교학자로 살아오셨고 지금은 학술원 회원으로, 솔직하고 겸허한 자세와 편안하면서도 진지한 태도로 강의하는 모습이, 신을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학자와 한 사람의 참된 면모를 느끼게 했다.

평생을 신과 종교에 관한 연구를 해온 분이지만 자신도 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겠다며 신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없다는 고백으로 시작했다. 평생을 연구해오신 분이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도 놀라웠고 더구나 직접적인 경험이 없기에 모른다고 하는 것도 더욱 놀라웠다. 신이란 존재는 각자에게 그야말로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존재다. 그러면서도 그 존재를 믿건 아니건 간에 모두가 궁금해하고 알고 싶은 존재일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은 ‘신이 어디에 존재하는가?’였다. 우리는 신을 일상에서 분리해서 교회나 성당 아니면 모스크 등의 거룩한 공간으로 유배시키고 감금하고 있지 않은가? 신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면 신은 우리 속에 존재해야 하며 우리와 일상을 함께 해야 한다. 그런데도 다시 우리 속에서도 유배시켜 감금해 두지 않는가? 신이 내 속에 존재한다면 그 신의 특성이 나를 통해서 표현되고 드러나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신은 한구석에 모셔두고 대신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내 속의 신마저 감금하고 은폐시킨 것이나 진배없다.

더구나 신이 내 안에 거한다면 나라는 존재는 신의 성전이 되며 그 성전을 신성하게 돌봐야 할 것이다. 내 안에 계시는 신의 품성이 나를 통해서 지금 여기에서 드러나야 하며 나는 그런 신이 이 땅에 드러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신은 이곳에 지금 우리와 함께하며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고 역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 신이 살아서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우리가 신의 통로가 되는 대신 신을 감금해 두고 우리가 신인 것처럼 신의 역할을 대신하며 세상을 휘젓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너무나 거룩하기에 어디 좋은 곳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찾아가서 요구하고 복을 비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더욱이 소위 말하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은 자신감으로 충만해서 스스로의 판단력을 굳게 믿고 그에 따라 일을 처리해 나간다. 마치 본인의 생각과 믿음대로 된다면 문제가 해결되고 천국과 불국토에 다가갈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들의 행동은 마치 자신이 바로 신인 것처럼 행동하며 신의 지위를 찬탈해서 스스로 차지한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신이 드러날 수 있는 통로가 아니라 스스로 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은 일상에서 분리되어 따로 지내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서 사람을, 우리를 통해서 그 모습을 드러내며 살아서 활동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신의 뜻이 아니라 인간에게 좋다고 여겨지는 의도와 분별심을 따르다 보니 신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역사가 이루어지며 신의 역사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신과 인간의 바른 관계는 어떤 것인가? 천지인이란 말은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체 또는 통로로서의 인간을 의미한다. 인간이 신을 제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 신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신의 역할을 하며 신을 유배시켜놓고 스스로 그 자리를 차지하며 휘두르고 있다. 특히 소위 말하는 세상에서 잘나고 성공한 사람들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더 그렇게 행동한다.

그러면 다시 어떻게 하면 유배된 신이 자유를 얻고 그래서 인간 세상에 직접 관여할 수 있을까? 분명한 점은 신을 대신해서 인간이 휘저을 것이 아니라, 신의 뜻에 따라서 이 땅에서 대리인의 역할을 해야 하며, 사람이 자신의 의지대로 함부로 관여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신의 지위를 찬탈하는 배신자가 아니라 충직한 신의 대리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철저한 객관화와 깊은 통찰을 통한 정화와 참회가 요구된다.

소위 말하는 도를 닦았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이 이미 신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아서 신의 뜻이 아닌 사람의 욕심과 욕망 또는 좁은 소견으로 다른 사람을 움직이며 거사를 도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의 역사가 그렇고 소위 말하는 영웅들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도와 하늘, 그리고 신은 이미 존재한다. 그러기에 맑고 순수한 가슴과 하늘에 순종하는 마음과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서 끝없이 정화하고 통찰해 가며 하늘과 도를 깨치고 사람의 바른 역할을 찾아가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인간에게 신은 어떤 존재인가? 신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그들 각자의 경험이 투영된 것으로, 신에 대한 인간의 생각이나 경험과 믿음으로 채색된 이미지다. 그래서 각자는 자기만 한 크기의 신을 가지며 각각의 특성도 다르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성은 신의 초월성에 대한 것이다. 신은 우리의 경험이나 이상 또는 꿈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그 모두를 넘어서는 초월성을 지닌다. 그러기에 신이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하나의 질문은 우리가 신을 찾아가고 알아가는 방식이 이런 인간적 논리와 이성에 의한 것이라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신에 관한 지식이나 생각 아니면 이론이지 신 존재에 대한 직접적 경험 내지 신을 그 자체로 아는 것이 아니다. 초월적 특성을 가진 존재를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 접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신에 관한 지식과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을 직접 체험하고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개인적으로 신에 대한 인식은 내 생명 안에 내재된 본향에 대한 기억으로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신에 대한 경외심과 믿음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믿음은 인간이 가지는 나약성과 한계에 대한 인식으로 더 강화된 것 같다. 그런 믿음이 어디서 왔는지를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믿음이 어렴풋하게나마 존재했고, 성장하면서부터는 전지전능한 창조의 근원과 힘이 존재할 것 같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믿음이 더해졌다.

특히 어린 시절 농업에 종사하는 가족과 자연을 통해서 관찰한 것, 보고 느낀 것 등에서 신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어도 자연의 순리나 하늘의 뜻 등의 말로, 신의 현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가 정한 수 한 사발 올리며 새벽마다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더구나 성장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아름답고 선한 모습이 내 안에 거하는 신에 대한 인식의 시작점인 것 같다. 내 속에 없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한다. 내 속에 그런 선함과 아름다움이 존재하기에 밖에서 드러나는 비슷한 특성들을 알아차리고 존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처음 접하게 된 예수의 삶을 통해서 인간과 내 삶이 단지 내 멋대로 살다가는 허망한 존재가 아니라 더 깊은 근원적 힘과 좀 더 구체적으로 마주하게 되었고, 뒤이은 행운으로 종교적 체험과 초월적 경험을 통해서 신의 현존과 역사를 확고히 알고 믿게 되었다. 나의 신에 대한 믿음은 특정 종교라는 형태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며 종교라는 형태를 만들기 전의 순수한 영적 차원에서의 신에 대한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신에 관한 생각과 경험은 모두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대부분의 사람이 더 관심을 가지며 꼭 알고 만나고 싶은 존재다.

인간 속에는 지고한 선과 진리 그리고 고귀한 사랑에 대한 깊은 열망이 깔려있다. 그러기에 그런 신의 사랑에 가깝다고 하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진하게 남아있다. 이런 그리움은 지고한 존재와 온전한 사랑에 대한 염원과 갈망으로 이 모두의 표상으로 신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며 믿고 따르게 된다.

이렇게 신에 대한 열망은 결국, 자신의 참 존재와 신성에 대한 인식으로 내 속에 살아있는 신성과 근원적 신 존재가 연결되며 더 궁극적인 존재에 대한 인식과 믿음을 넘어 하나 되고자 하는 염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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