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을 곤경으로 몰아넣은 엄청난 재난을 일으킨 방화범이 불을 지른 이유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그랬다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더구나 동네 사람들은 그 사람과 말을 섞어본 일도 없고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런 부류의 말을 흔하게 듣는다, 특히 어떤 잘못을 저질러 놓고서 변명하는 이유로. 그런데 여기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점은 다른 사람이 정말 나를 무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무시해도 내가 스스로 무시당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요새 애들이 하는 것처럼 ‘반사’해서 되돌려 주면 그뿐이다. 내가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것은, 나도 나를 무시하며 상대방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남이 날 무시해도 스스로 내가 무시당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고 무시당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무시한 사람을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말한 사람에게 되돌려 주며 내 몫의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말한 사람도 스스로 자신 몫을 책임지라고 하는 반사가 장난 같지만 맞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못하고 스스로 무시당했다고 여기는 태도는 뭘까? 그것은 스스로가 지니는 열등의식이나 낮은 자존감에서 나온 자작극이다. 마을 사람들이 아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남들이 욕할 것으로 여기고 피해의식을 가진다면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이 택한 일로 스스로 져야 하는 책임이다. 어느 무엇도 그것과는 상관없지만, 당사자 편에서는 모든 것이, 변명과 이유가 된다.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햇볕도, 이상의 시에서처럼 녹색과 녹음도 다 변명거리가 된다. 뭐든지 걸리면 다 이유가 된다.
이처럼 남을 탓하고 다른 사람이나 상황으로 내가 기분 나빠지고 심사가 뒤틀리는 이유로 들자면 어느 한순간도 내가 편할 날이 없고 내 마음에 드는 일이 없게 된다. 그러나 그 모두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수용하게 되면 변명도 이유도 모두 사라지게 된다. 이런 비슷한 태도가 가정 폭력이나 약물남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술을 마셔서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폭력을 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해결책도 간단하고 쉬워진다. 자신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수용하는 것이며 어떤 변명도 이유도 찾지 않으면 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전쟁도 마찬가지다. 침략전쟁을 합리화할 수 있는 마땅한 명분과 구실을 찾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작게는 한 개인에서 크게는 나라 간에도 똑같은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다르게 보면 바로 이런 점이 우리가 유치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방구가 열리게 된다. 스스로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입 닫고 본인이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나갈 수 있는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요구된다. 그렇게 참는 것이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같이 휘말려서 잃는 것보다 훨씬 더 이익이고 인류의 공영과 평화에 이바지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태도로 요즘에는 고립과 고독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고립은 가능하지 않다. 신체적인 고립은 있을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스스로가 고립을 선택하지 않는 한은. 가만히 혼자 있어도 우리는 자연히 여러 사람과 거물 망 같이 엮어져 있고 기억이 있는 한 고립될 수 없다. 가만히 혼자 있어도 지속적인 마음속 대화가 이어지며 혼자서 싸우기도 하고 즐거워도 한다. 아무리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도 자기 혼자만의 독백이 더 많게 마련이다. 그런 자기 대화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고 세상이 바뀌게 된다.
이렇게 보면 모든 결정은 결국 당사자가 스스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여기며 어떻게 대접하는가에 따라 모두에게 분노와 노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아니면 그 모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어느 길을 택하는 가는 전적으로 당사자 본인에게 달렸으며 그래서 어떤 삶을 누리는 가도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 모두를 희망과 축복으로 이끌기도 하고 엄청난 불행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내가 하는 작은 선택이 가볍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