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화분에 꽃들이 줄줄이 피어나는 것을 보며 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제일 먼저 얼굴을 내민 것은, 고운 보랏빛 제주 달개비다. 바람 많은 제주 태생이라 털북숭이로 잎 전체가 하얀 솜털로 싸여있어 유난히 부드럽고 따뜻해 보인다. 그다음으로 등장한 것은, 역시 생명력 강한 제라늄으로 한 송이가 피더니 점점 커져서 아이 머리 만 한 것이, 여간 풍성하지 않다.
이 꽃은 원래는 진분홍이었다. 그러나 실내에서 자라다 보니 옅어져서 예쁜 살구색이 되었다. 그런데 외부에다 심어보니 다시 진하게 변했지만 나는 실내에서만 키우고 있다. 이 꽃의 원뿌리는 수십 년 전에 사다가 계속 꺾꽂이로 번식해 가고 있다. 한 때는, 큰 베란다 전체를 제라늄으로 가득 채운 적도 있지만, 지금은 단출하게 키운다. 우리 집에서 얻어간 꺾꽂이도 다른 곳에서 잘 자라고 지금쯤 꽃이 피었으리라.
내가 제라늄을 집안에 키우는 이유는 생명력이 강해 실내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꽃도 자주 피고 모양새도 풍성해서 좋다. 게다가 특유의 향이 해충이나 벌레를 막아주며 진드기도 끼지 않아 손을 덜 타기 때문이다. 식물이 가지는 자기 방어를 위한 강한 향을 어떤 이들은 싫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문제가 되기보다는 즐기며, 스스로 보호하며 잘 자라는 것이 기특하게 생각된다.
꽃을 좋아해서 지나가다가도 눈에 들어오면 사는 편이지만, 요즘은 새 화분을 사기가 망설여진다. 유전자 조작으로 한 해만 자라도록 만들어졌거나 꺾꽂이가 되지 않도록 조작된 것이 많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하다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꽃도 여러 해 보지 못하게 일회용으로 만들어 버렸고 나무도 자라지 못하게 조작한 것들이 더 많다고 한다. 식품과 식용작물도 마찬가지다.
삭막한 겨울에는 미나리 밑동을 키우거나 고구마 줄기를 키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어느 해 싹이 난 고구마를 물에 담가 두었지만 줄기가 영영 자라지 않았다. 그때야 유전자 조작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식물은 몸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영양상 문제가 안 된다고 해도 생명을 조작한다는 것 자체가 두렵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이미 식탁 깊숙이 들어와 버려 지금은 다 구분해 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나야 이미 살 만큼 살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래학자들은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질 수 있는 몇 가지 요인 중 하나는 생명에 대한 조작 때문일 것이라 한다. 그리고 종의 다양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무서운 속도로 멸종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문제가 되는 비만의 원인 중 하나가 미국산 밀을 개량해온 방식 때문이라고 한다. 맛과 생산량 위주로 개량하다 보니 지금의 밀을 먹게 되었고 이미 입에 익어서 그리고 소출 문제로 다른 종류를 심지도, 먹지도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 밀 살리기 운동과 우리 종자 보존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천민자본주의가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고 생명에 대한 경시가 도를 넘고 있어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식사만 해도 우리 고유의 식단은 발효식품과 찜요리가 기본으로 채소 위주의 식사였지만 요즘은 고기와 디저트 그리고 기름에 튀기고 온갖 소스 범벅으로 바뀌고 있다. 커피값이 식사와 맞먹고 새로 생기는 멋진 건물은 다 커피집이다. 그러니 다이어트 산업이 번성하며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가 큰 과제로 남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농촌으로 들어가서 직접 생산해서 먹을 수도 없으니 ‘유기농’,‘건강식품’이라는 말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도 한계가 있고 연구에 의하면 유기농과 건강식품은 일반식품보다 평균 3-5 배 이상의 값을 지불하고 있지만, 그 효과나 실제적 가치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약간의 위약효과는 있을 것이며 스스로 그렇게 돈을 낼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 나머지는 상당히 의문스럽다.
그래서 가정에서 스스로 키워 먹는 작은 텃밭이나 도시농업 등이 유행하고 있다. 나도 그런 노력을 취미 삼아 해 보았지만, 아파트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쉽지 않았다. 관심이 많은 사람은 충분한 시설을 갖추어서 키우지만 그렇지 못한 나는 그저 내 몸이 적응하기를 바라며 대충 넘어가고 있다. 정말 우리 몸이 얼마나 적응력이 강한 가는 이미 알고 믿지만 그러다 병에 걸리면 팔자려니 하고 넘긴다.
그래서 더욱 나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꽃들이 반갑고 귀하게 여겨진다. 이들이 전하는 엔도르핀과 세로토닌 그리고 도파민이 나에게는 최고의 명약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