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다운 사람을 만나기 힘든 세상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오래된 주택가 한적한 골목에서. 노인은 고장 나서 버린 물건들을 모아서 수리하는 일을 소일 삼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오기 전에 선풍기를 수리해서 더위가 오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추위가 다 가면 버려지는 낡은 전열기를 고치고, 장마 전에 우산을 손질해서, 비 맞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이분이 하는 일을 조금 확대해서 생각해 보면 ‘노아의 방주’에 나오는 노아와 비슷한 사람으로 자비와 돌봄의 방주를 만들고 있다.
철없는 사람들이 한 치 앞도 모르고 함부로 버리며 쓰레기를 만들 때, 아무 말 없이 다듬어서 새것처럼 만들어 필요한 이에게 전한다. 긴 세월을 살아온 노인다운 준비성과 너그러움이 묻어나는 행동이다. 이분 앞에서는 환경보호나 자원 재활용이라는 개념이나 외침이 무색해진다. 왜 이런 일을 하시느냐 물으니 ‘이런 것 가지고 놀면 시간이 잘 가며 재미있고 요긴하게 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니 보람 있어서’라며 돈 몇 푼 받는 것보다 고마워하는 마음이 더 소중하다며 공짜라고 했다.
그야말로 자비심이고 보살행으로 무심하게 실천하고 있다. 함부로 버리는 사람을 나무라며 잔소리하지도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을 내세우지도 않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고. 이런 모습이 노년의 아름답고 보람된 모습으로 느껴진다. 노인은 시계와 라디오를 고치며 생계를 유지해 오다 나이가 많아 이제는 집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동네에서 도움이 필요한 것을 고쳐주기에, 없어서는 안 될 분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렇게 노년기에는 자신이 가진 재능과 재화 등의 자원을 필요한 곳에서 조용히 사용하는 모습이 참 넉넉하고 평화롭게 느껴진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느끼고 배운 것들을,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은, 삶의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 덕일 것이다. 누군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베푸는 것이, 먼저 살아본 사람의 지혜일 것이다.
노년기의 넘치는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나이 들어서는 본인에게 부여된 일을 끝낸 다음에는, 먹고사는 데 큰 불편이 없다면 이렇게 그저 나누며 경제적인 일뿐만 아니라 삶의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다. 신이 주신 재주나 능력으로 삶의 의미와 보람을 가꾸어나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이가 더 행복하다. 이렇게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은 넉넉한 마음으로 하기에 주변이 훈훈하고 따습다. 나이 들어서는 재능이나 재화 등의 귀한 자산을 사회에 되돌려주고 나누려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학력도 높고 전문직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많은 그야말로 능력 있는 노인 은퇴 세대다. 그래서 좋은 인력자원을 활용하는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자원봉사할 의향은 있지만, 그들이 하고자 하는 분야가 대부분 가르치는 일이나 감독 또는 자문하는 일을 원한다.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은퇴 후 사회 참여나 기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은퇴 시에 자부심을 가질만한 지위에 있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지시하는 일을 했던 사람들이기에 본인이 몸으로 직접 하는 봉사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고상하게 가르치거나 자문 등의 우아하고 편한 일로 자신을 과시하며 대접받기를 원하기에, 고급인력이 사장되고 있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며 봉사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봉사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복지관에서도 식당에서 식판 나르는 봉사자는 많아도 도시락을 집으로 배달하는 봉사는 힘들다며 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목욕탕에서 장애인의 몸을 씻겨주는 봉사자는 찾기 힘들다.
관장으로 일할 때였다. 하루는 건장한 사람이 봉사하고 싶다며 왔기에 잘 됐다며 목욕탕 도우미 일을 시켰지만 몇 번 하지도 않고 금전 기부로 대신하겠다고 했다. 그가 누군지 눈치챈 내가 돈은 정부에서 충분히 받으니 봉사자가 필요하다고 우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좋은 몸과 힘으로 당사자의 악업을 씻어낼 기회를 주었지만 거절했다.
그는 좋은 신체와 힘으로 악업만을 저지르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봉사하려는 이유도 재판 과정에서 점수를 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본인의 업장을 씻어낼 수 있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놓친 것이다. 과연 이런 축복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일이 그 사람만의 일일까? 봉사하는 분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내가 도운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였다. 도움을 주고받은 것이 다른 형태지만 봉사를 이어가는 큰 동인이 되고 있다. 타인에 대한 진정한 봉사는 내 삶의 가치와 보람을 찾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