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길어져 지루해질 즘이면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와 생기를 불어넣는다.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향기로 존재감을 과시하며 의연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백합의 등장이다. 강렬한 백합 향기에 수국도 물러나며 자리를 양보한다, 버틸 재간이 없기에. 너무 강력한 존재 앞에서는 조용히 물러서는 것이 도리라는 것을 잘 알기에.
백합이 피어난 길은 교회나 수도원 길처럼 숙연한 마음이 되어 조용한 걸음으로 다가가게 된다. 그러면서 안팎으로 살피며 옷매무새와 함께 내면도 뒤돌아본다. 비와 함께 끈적거림을 견디며 씻어내고 닦아낸 내 존재를 다시 성찰하게 한다.
언제 이렇게 깊은 참회의 시간을 가졌던가? 장마는 밖으로만 떠돌며 들뜬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고요히 침잠해서 내면의 뜰을 가꾸게 한다. 그래서 뜨겁게 내리치는 시간을 이겨낼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세상의 분주함과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서 눈을 감고 정좌하는 안거의 시간이 된다.
올해는 장마가 좀 이상스러워서인지 백합이 눈에 잘 드러나지 않아서 궁금했다. 그런데 세상에! 초등학교 언덕 축대 안에 가득한 오리나무 숲 속에 백합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은 지나가는 사람도 드물고 사람들 눈길도 뜸한 곳이다. 마치 산속 깊은 곳에, 숨은 듯이 자리 잡은 수도원같이. 모두의 관심이 멀어진 곳에서 홀로 피어나 꽃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번잡스러운 길거리보다야 훨씬 더 백합에 어울리는 곳으로 여겨지는 곳에, 숨은 듯이 피어있어 더 우아하고 고고해 보였다.
없는 듯이 존재하는 신의 현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이나 시선과는 무관하게 이어지는 신의 손길과 자비로움이 꽃과 향기로 전해진다.
창밖에 비를 맞으며 피어나는 태산목의 우아한 자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품격과 위풍을 드러낸다. 주변이 눅눅하고 어두침침하기에 더 고고해 보이며 더 품위 있다. 비에 젖어 도리어 더 존재감을 드러내며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속 깊은 경탄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이라는 존재도 저렇게 비를 맞아도 그 본성을 유감없이 드러낼 수 있다고, 비로 인해 초라해지기보다는 더 우아하고 품위를 격상시킬 수 있다고.
비 오는 험상궂은날이 아니라면 저렇게까지 그 본성이 두드러지지 않을 거라고. 비바람에 시달려 쭈글쭈글한 모습이 아니라 더 등뼈를 곧추세우고 균형 잡힌 모습으로 버틸 수 있다고. 그리고 이 모든 시련이, 결국은 다 지나가며 사라져도 그 향기는 진하게 남을 거라고.
우리 삶도 이런 것이 아닐까? 모두가 지나가는 바람으로 새롭게 재창조되는. 내가 이 땅에 뿌린 씨앗들도 꽃피고 열매 맺으며 더러는 새에게 쪼이고 바람에 날아가 버릴지라도 그래도 생명은 이어지며 번성할 것이다. 그런 생명의 역사와 환희를 위해 기꺼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내 몫의 삶을 이어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