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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Aug 08. 2022

백합 투어

 지금 해운대는 더위를 피해 온 외지인들로 북적인다. 이럴 때 현지인들은 점잖게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예의다, 우리야 뭐 항상 즐길 수 있으니. 대신 나는 셀프가이드 투어를 나섰다, 이름하여 백합 투어. 아마 이런 투어는 나만이 누리는 호사일 것이다.  

    

 지금은 해운대 일원에 백합이 만발했다. 길거리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지만,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은 따로 있다. 아마도 이렇게 백합이 흐드러지게 핀 곳은 여기뿐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그런데 이런 군락지는 나처럼 꽃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찾기 어려운 곳이다.  

   

 달맞이 언덕길 초입에 있는 전망대 아래 언덕은 그래도 눈에 잘 들어온다. 이곳이 처음 내가 백합을 발견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서면 다들 바다와 백사장 전망에 빠져버린다. 그러나  찬찬히 살피며 눈을 사방으로 돌리다 보면 언덕 아래 하얗게 피어난 백합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피어있는 백합은 참 낭만적이다. 달맞이 언덕 끝자락 언덕에도 꽃이 한창이다. 그러나 길가라 소음 때문인지 좀 짠하며 속세에 시달린 느낌이 든다.  

   

 장관을 이루는 군락지는 동백초등학교 주변이다. 이곳은 비탈길이라 언덕 위와 아래 구석지고 버려진 곳을 몽땅 차지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백합이 제 앉을자리를 참 잘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의 간섭이나 구속 없이 마음 편하게 자기들끼리 다 차지할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학교 뒤 버려진 땅 언덕 숲 속에 숨어 핀 꽃은 마치 은둔해서 기도로 살아가는 봉쇄 수도원 같은 느낌이 든다. 그에 비해 아파트 단지의 언덕 위 꽤 넓은 자투리땅을 차지한 백합은 모두가 우러러볼 수밖에 없으니 더 닿기 어려운 위엄을 지니는 것 같다.   

  

 이곳은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곳이지만 요즘은 꽃을 보기 위해서 나는 매일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백합이 줄지어 핀 길을 따라 걸어가면 마치 내가 엄청난 열병식의 사열을 받는 것처럼 우아하고 근엄한 착각이 든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내가 그들에게 허리를 굽혀 알현하고 고개를 치켜세우며 눈도장 한번 찍으려고 애쓰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건 다 좋다. 이런 고상한 길을 즐기며 걸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우 만족하니까.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고고한 백합은 모두 자투리 버려진 곳에서 군락으로 피어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곳, 관심거리에서 벗어난 쓸모없는 땅에 피어나 새로운 쓸모를 만들고 있다. 백합이 주는 이미지가 천국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 같은데, 이런 성스러움이 속세의 관심에서 벗어난 곳에서 피어난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예수가 누울 곳이 없어 구유에 누웠던 것처럼, 세상에는 그런 아름다움과 진리가 자리할 곳이 바로 그렇게 버려진 자투리땅밖에 없나 보다. 세상에 대한 욕망과 관심으로 채워진 곳에는 하늘의 진리와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없기에. 오직 땅의 관심에서 벗어난 곳만이 진리와 아름다움이 자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나 보다. 

 어릴 적 어디선가 본 그림이 생각난다, 예수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는 장면이. 지금도 하늘 문이 이 땅에 열릴 수 있는 곳은 세속적 관심에서 비켜난 곳이 아닐까? 땅과 세상에 관한 관심으로 채워진 의식에는 하늘길이 열릴 수 있는 틈새가 없을 것이다. 새로움과 새 세상은 이런 틈새와 비어있는 공간에서 백합처럼 조용히 자리 잡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 안에는 그런 여유와 틈새가 얼마나 있는가? 천국을, 새로움을 영접하고 뿌리내릴 수 있는 터전이 얼마나 될까? 어릴 적 본 그림처럼 천국은 이 땅에 깃들 곳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백합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을 회복한다면 백합화 만발한 동산 같은 천국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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