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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Aug 14. 2022

교과서 음악회

 연이은 3일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름하여 ‘교과서 음악회’, 해운대 문화회관에서 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친숙한 클래식 연주회를 방학 특강으로 열었다. 

 첫날은 타악기 앙상블로 귀에 익은 곡들을 재즈와 라틴 그리고 탱고 풍으로 편곡해서 재미있게 연주했다. 사실 타악기는 그 자체만으로 연주회를 하기엔 좀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젊은 감각으로 볼거리를 제공하고 유쾌한 감각과 편곡을 통해서 즐겁게 들을 수 있어 신선했다. 

 둘째 날은 잘 알려진 소설과 영화의 주제곡들을 해설과 함께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더구나 찌는 듯한 무더위에 페르퀸트 모음곡들을 통해 핀란드와 노르웨이의 맑은 공기와 서늘한 바람, 고요한 호수와 숲을 따라 산책하던 기억이 떠올라 좋았고,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더운 날엔 북유럽으로 다시 피서를 오겠다던 다짐이 언제나 실현될지, 전운이 감도는 그곳에도 안정과 평화가 깃들기를. 

 마지막 날은 남성 중창단의 친숙한 곡들로 참가한 어린이들과 엄마부대도 한껏 즐기며 참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역시 사람의 목소리 만한 악기가 없으며 남성들의 묵직하고 깊은 저음은 언제 들어도 좋다.


 영국 유학 시절 숙소 근처의 공연장을 갈 때마다 우리는 언제 이렇게 편하게 다양한 공연을 누리려나 하는 부러움이 일었다. 그러나 지금은 집 근처의 문화회관이 내 놀이터가 되고 젊은 예술인들에게도 다양한 시도를 장려하는 공연들이 이어지고 있다. 젊은 지역 예술인들을 지원한다는 면에서도 많이 참가하려고 노력한다. 

 로열 앨버트 홀에서 세계 최정상급의 연주회도 좋지만, 지역문화회관에서 즐기는 젊은 지역 예술인들의 참신한 시도와 깜찍 발랄한 연출도 상큼하고 풋풋해서 좋다. 그런 시도와 노력이 모여서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며 넓은 지역사회 저변을 확보해서 문화와 예술이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들어 삶의 품격을 높여주고 여유와 유머를 되찾게 해 줄 것이다. 

     


 동행했던 초등교사 출신의 선생님은 교과서 음악회라 해서 동요 부르는 곳으로 착각했다고 해서 모두 한참을 웃었다. 나는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클래식으로 지금도 우려먹고 있다. 그러니 다양한 교과과정을 통해서 배우고 또 배워나갈 음악이 오랫동안 우리 삶과 함께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이 교과서로 교실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공연장에서 연주회를 관람하는 것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어릴 적 골목길에서 흘러나온 ‘엘리제를 위하여’를 처음 듣고서 발걸음이 굳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언급되었던 ‘G선상의 아리아’를 듣고서 숨이 멎었었다. 이번에 다시 들은 라벨의 ‘볼레로’는 피아노 6중주임에도 오케스트라 못지않은 긴장감과 격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실시한 경연들로 일반 사람들도 거의 귀명창 수준이 되어 음악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이 확실히 높아진 것 같다. 이런 예술의 보편화와 일상화가 진정 우리 삶에 품격을 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들을 위해서 방학 특강으로 클래식 음악회를 연 기획 의도에 박수를 보낸다. 내 옆에 앉았던 어린이는 아는 곡이 나올 때마다 온몸으로 반응했고 곡이 끝나면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즐거웠다.  

   

 사회복지를 실천하면서 마음 아팠던 일 중 하나는 시설 아동들을 1만 원짜리 뷔페에 데려가면 만 원짜리 행동을 하고, 5만 원 하는 곳에 가면 그에 맞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복지 수혜자들을 싸구려나 먹고 싼 티 나는 공짜 공연이나 보는 허접한 존재로 대접하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 

 그래서 시도한 복지관 음악회에서 지역의 유명한 기타 리스트가 ‘로망스’를 연주하자 장애인들이 갑자기 눈이 뚱 그레지며 처음 들어보는 감미로운 선율에 초집중하던 기억이 난다. 냄새난다고 기피하는 장애인복지관에도 뽕짝만이 아니라 최고의 연주가 필요하다, 아니 더욱 절실하다. 그들도 들어보면 알고 느낀다.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여성 이중창이 나오자 모두가 고개를 돌리며 반응했던 것처럼. 


 어려운 곳일수록, 어려운 때일수록 더 고양된 정서와 아름다움이 사람의 영혼을 맑게 하고 치유하며 위로해 준다. 정녕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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