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선화 Aug 20. 2022

신(GOD) 이야기

  얼마 전 재미있게 들었던 강의는 저명하신 정진홍 교수님의 신(God)에 대한 강의였다. 평생을 종교학자로 살아오신 분으로 솔직하고 겸허한 자세와 편안하면서도 진지한 태도로 강의하시는 모습이, 신을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학자와 한 사람의 면모를 느끼게 해서 큰 감동을 주었다.

 평생을 신에 관한 연구를 해온 사람이지만 자신도 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며 신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없다는 고백으로 시작했다. 신이란 존재는 각자에게 그야말로 있다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존재다. 그러면서도 그 존재를 믿건 아니건 간에 모두가 궁금해하고 알고 싶은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신에 관한 여러 주제로 이어 나갔다. 


 그중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은 ‘신이 어디에 존재하는가?’였다. 신을 일상에서 분리해서 교회나 성당 아니면 사찰 등의 거룩한 공간으로 유배시키고 감금하고 있지 않은가? 신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면 신은 우리 속에 존재해야 하며 우리와 일상을 함께 해야 한다. 그런데도 다시 우리 속에서도 유배시켜 감금해 두고 있지 않은가? 신이 내 속에 존재한다면 그 신의 속성이 나를 통해서 표현되고 드러나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신은 한구석에 모셔두고 대신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내 속의 신마저 감금하고 은폐시킨 것이나 진배없다.     

 더구나 신이 내 안에 존재하고 거한다면 나라는 존재는 신의 성전이 되며 그 성전을 신성하게 돌봐야 할 것이다. 내 안에 거하는 신의 특성이 나를 통해서 지금 여기에서 드러나야 하며 나는 그런 신이 이 땅에 드러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신은 이곳에 지금 우리와 함께하며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고 역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 신이 살아서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우리가 신의 통로가 되는 대신 신은 감금 시켜 두고 우리가 신인 것처럼 신의 역할을 대신하며 세상을 휘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은 너무나 거룩하기에 어디 좋은 곳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찾아가서 요구하고 복을 비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서 사람을 통해서 그 모습을 드러내며 살아서 활동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신은 어떤 존재인가? 신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그들 각자의 경험이 투영된 것이다. 신에 대한 인간의 생각이나 경험과 믿음으로 채색된 이미지다. 그래서 각자는 자기만 한 크기의 신을 가지며 각각의 특성도 다르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성은 신의 초월성에 대한 것이다. 신은 우리의 경험이나 이상 또는 꿈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그 모두를 넘어서는 초월성을 지닌다. 그러기에 신이다. 

    

 그런데 여기서 강하게 일어나는 의문은 우리가 신을 찾아가고 알아가는 방식이 이런 인간적인 논리와 이성에 의한 것이라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신에 관한 지식이나 생각 아니면 이론이지 신 존재에 대한 경험 내지 신을 그 자체로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초월적 특성을 가진 존재를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 접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신에 관한 지식과 이론에 지나지 않는 신학이지 신에 대한 직접적 경험 내지 앎이나 깨달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신을 직접 체험하고 알 방법은 없을까?     


 개인적 생각으로 신에 대한 인식은 인간 생명 안에 내재된 본향에 대한 기억으로 본능적으로 알며 자연스럽게 신에 대한 경외심과 믿음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믿음은 인간이 가지는 나약성과 한계에 대한 인식으로 더 강화되기도 한다. 그런 믿음이 어디서 왔는지를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존재했고, 성장하면서부터는 전지전능한 창조의 근원과 힘이 존재할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론으로 믿음이 더해졌다.


 특히 어린 시절 시골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가족과 자연을 통해서 관찰한 것, 보고 느낀 것 등에서 신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어도 자연의 순리나 하늘의 뜻 등의 말로, 신의 현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가 정한 수 한 사발 올리며 새벽마다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더구나 성장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아름답고 선한 모습이 내 안에 거하는 신에 대한 인식의 시작점인 것 같다. 내 속에 없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한다. 내 속에 그런 선함과 아름다움이 존재하기에 밖에서 드러나는 비슷한 특성들을 알아차리고 존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접하게 된 예수의 삶을 통해서 내 삶이 단지 내 멋대로 살다가는 허망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과 더 깊은 근원적 힘과 더 구체적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뒤이은 행운으로 종교적이고 초월적인 경험을 통해서 신의 현존과 역사를 확고히 알고 믿게 되었다. 이처럼 신에 관한 생각과 경험은 모두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며 꼭 알고 싶어 하는 존재다.  

    

 인간이 신에 관해 동경과 열망을 갖는 것은 결국, 우리 일상의 성스러움을 회복하고 삶의 온전함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 속에는 지고한 선과 진리 그리고 고귀한 사랑에 대한 깊은 열망이 깔려있다. 그러기에 그런 신의 사랑에 가깝다고 하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진하게 남아있다. 이런 그리움은 지고한 존재와 온전한 사랑에 대한 염원과 갈망으로 이 모두의 표상으로 신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며 믿고 따르게 된다. 


 이렇게 신에 대한 열망은 결국, 자신의 참 존재와 신성에 대한 인식으로 내 속에 살아있는 신성과 근원적 신 존재로 연결되며 더 궁극적인 존재에 대한 인식과 믿음을 넘어 하나 되고자 하는 염원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이전글 영성적 상담과 치유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