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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Oct 06. 2022

심리적 대청소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이미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나서 지금 화가 나고 혼자서 분노하게 된다. 어떤 연유에서 이런 해묵은 감정과 기억들이 재소환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이런 일들은 어떤 감정의 찌꺼기와 앙금 내지는 옹이가 박혀 있는 사건들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미해결 과제라고 한다. 이런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무의식 속에 묻혀있다가 어떤 계기로 의식의 수면으로 떠 오른 것이다. 사람의 심리는 이렇게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경험을 해결하고자 하는 본능이 존재한다.      

 첫사랑이 모두의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이유는, 그것이 특별했다기보다는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종의 미해결 과제이기에 여러 가지 환상과 기대가 덧칠해져 특별한 것이라 착각하게 된다. 이처럼 완결 지어 흘려보내지 못한 심리적 잔재들이 우리의 무의식에 남아서 우리도 모르게 충동질하며 지금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주어진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과거 기억 속의 찌꺼기와 잔재들을 폐기 처분하는 심리적 대청소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 일들이 떠오른다 해도, 지나가는 바람이나 구름처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면 무의식적 조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프로이트는 통찰력이라고 했다.     

 매일매일 닦아내고 치우지만 그래도 밀쳐둔 일들을 어느 날 마음먹고 나서서 해치우게 된다. 계절이 바뀌면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 곳곳에 방치된 먼지를 닦아내고 털어내는 대청소도 묶은 것들을 털어버리고 새 계절을 산뜻한 기분으로 맞기 위함이다. 이런 대청소 작업이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우리 머리와 가슴에도 필요하다. 


 그런데 물리적 공간은 눈에 보이기에 치우기 쉽지만, 심리적인 공간은 주의를 기울여 반복해서 떠오르는 주제를 깊이 들여다보며 그 속에 숨겨진 요소들을 의식적으로 정리하고 떨쳐버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고서도 다시 떠오를 땐 그냥 감정적 동요 없이 흘려보내며 끊어버리게 되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내 안에서도 반복되는 기억들이 있다. 그런 기억들은 대게가 그 당시 성숙하게 처리하지 못한 일이거나 용기가 부족해서 다 말하지 못한 것이나 억울함을 느끼는 일들이다. 그런데 다시 그런 일로 심리적 불편과 중압감을 느낀다면 그건 이중, 삼중으로 피해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눈으로 다시 찬찬히 바라보니 진작에 버렸어야 할 그야말로 쓰레기들이다.

 이런 대청소 작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어떤 점에 예민하다거나 또는 무엇에 자극받기 쉽다는 등의 스스로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쉽게 이런 일들을 트라우마라고 하며 그런 트라우마를 정당한 것으로 합리화하며 보호하려는 경향까지 있다. 스스로 민감하고 예민한 부분에 대해선 주의가 필요하지만, 언제까지 지니고 다니며 보물인 양 간직할지 의문이 든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의 삶에 중요한 주제가 몇 가지 있다. 돈에 가치를 두는 사람은 돈과 관련된 일에 예민해서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다른 사람은 힘과 권력이 중요한 요소인 사람도 있다. 그런 자신을 알고 인식하며 바르게 다스려 나간다면 자제력을 회복하고 심리적으로 통제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돈과 권력에 노예가 되며 아무리 가져도 목마르고 그러다 가져본들, 짐이 되고 멍에가 되며 이미 족쇄가 된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될 것이다.  

    

 이처럼 트라우마나 불편한 기억들도 이제는 철없고 서툴렀던 시절의 일로 무심히 바라보며 웃어넘기거나 털어버리는 것이, 마음의 먼지와 짐을 덜어내는 방법이다. 이렇게 덜어내는 방법 중 하나는 거리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과도 조절이 필요하며 특히 내가 부담을 느끼고 부적절한 자극을 받는 사람과는 새로운 거리 조절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서로 잘 지낼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서로가 어려움을 느끼는 관계는 거리감을 유지함으로써 좀 더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되고 반성하게 되며 내 속에 차 있는 찌꺼기와 먼지를 털어낼 수 있는 여유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고 극단적 형태로 서로에 대해서 변화를 요구하다 큰 사달이 나기도 한다. 그러니 상대를 믿고 또 자신을 믿으며 삶이 그들을 성장시키고 가르칠 것이라는 믿음으로 멀리서 지켜보는 것도 사랑이고 애정이다.     

 그러면서 상대에게 변화를 바라는 만큼 내 속에서의 숙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일은 찬찬히 들여다보면 분명 더 현명하게, 아니면 적어도 다르게 대처할 방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상대만을 탓할 수 없는 것이며 내 몫의 책임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특히 가족 간에 일어난 일은 거리를 유지하기도 힘들고 매일 마주하다 보면 반복되는 유형에 좌절하기가 쉽다. 그래서 그 사람의 자원과 장점을 보며 새로운 희망을 품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의 말도 들어보고 도움을 받으며 나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고정관념을 가지는 한 상대방은 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상대를 그렇게 만들고 규정하며 정해진 상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속의 대청소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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