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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Oct 22. 2022

삶의 그늘

 사람 속에는 모두 그늘이 있다. 이런 그늘은 성장 과정에서의 부정적 경험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집안이 가난했거나 공부를 못했거나 아니면 한부모가족이었거나 등등의 요인으로 남들에게 노출하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부족함과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우리 부모가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우리가 자라온 환경이 천국과 불국토가 아니었기에, 누구나 경험하는 다반사다. 그런데도 남과 비교해서 나만 부족하게 여겨져서 마음의 그늘을 갖게 된다.   

  

 그러나 모두가 형태는 달라도 이런 식의 그늘이 있기에 나만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나만 문제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마음의 부담과 짐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이나 과거의 경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당사자의 삶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가이다.   

  

 시력이 약한 한 장애인이 한 동네에서 또래들과 함께 자라다 모두 군대에 가는데 본인만 못 가게 되자 그때부터 일탈과 반항이 시작되어 평생을 잡범으로 살았다. 이런 상황을 얼마든지 달리 보고 해석하거나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자신은 모두 가는 군대에도 못 가는 병신이라며 깊은 열등감과 좌절의 늪을 헤매게 된 것이다. 먼 훗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왜 그리 시간을 낭비하고 스스로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그늘과 열등감이 바로 우리를 키워온 거름이며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부족하고 모자라기에 더 노력했고 더 열심히 살았다. 부모들이 가난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 같이, 우리도 우리를 짓누르는 약점과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서 성실하게 살아온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그런  어려움과 모자람이 없었다면 얼마나 교만해지고 세상이 모두 내 것인 양 함부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가 가지는 그늘이 우리를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도록 도왔고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도 이해하고 측은지심으로 돌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진 열등감이 우리를 살린 주요인이며 힘이었다.   

  

 이런 점에서 칭기즈칸은 글도 모르고 배운 것도 없는 사람으로 자신의 약점을 보충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연 결과로 ‘칸’이 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우리가 가진 모자란 점을 숨기고 없애려고 노력할수록 더 드러나며 끝까지 우리 곁에 남아서 떨쳐버릴 수 없는 족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인정할 점은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모두에서 벗어난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늘이 더는 우리 삶의 어둠이고 장애물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특효약이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나무가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상처받지 않을 수 없고, 모진 비바람에 가지가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히 다른 생명체를 품어주고 보살펴 주는 노거수와 같다. 그 품 안에서 많은 생명체가 둥지를 틀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삶은 그런저런 과정을 통해서 상처받고 쪼그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두를 초월해서 그 모두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별일 없었다는 듯이 자기 몫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게 된다. 한여름 뙤약볕에서도 시원한 그늘을 찾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며 가슴을 녹여주어 편히 쉬어갈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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