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선화 Nov 14. 2022

빛의 성전에 이르는 일곱 계단

평정

평정     

평정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관련된다. 평정 안에서는 내 안에 계신 분의 완전한 평화가 함께 한다. 평정은 외적인 어떤 일도 ‘나를 흔들지 못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따라서 평정 안에서는 외적인 부침에서 벗어나 완전하고 영원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평정은 내 안에 존재하는 경이로운 이에 대한 깨달음의 샘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사랑의 빛을 결과에 구애됨 없이 힘껏 발산하라.     

마음은 사람의 구원에 필수 요소이지만, 방해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은 인간사를 지시하고 이끄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주관하는 분이 드러날 수 있는 통로로 만들어졌다. 내적 존재가 드러날 수 있는 창으로써 마음은 완벽하다. 사람의 마음이 평화롭고 안에 계신 분에게 정확히 초점을 맞추게 되면 열린 창을 통해서 경이로운 이의 영광과 권능이 드러나서 인류에게 완벽하게 이바지하게 된다.     

평정은 경이로운 이의 길이며 완전한 신뢰를 안에 계신 주님께 둔다. 그가 하나의 근원임을 아는 이가 평온한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의 평화롭고 고요해지라는 축복의 말씀에 따라 세상의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평정은 안에 계신 분에게서 나오며 평화를 막는 것들을 제거하고 온 마음을 바치는 자에게 사랑의 기름을 부어 주신다.     

안에 계신 경이로운 이를 믿고 행하기 전에는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마음의 평화와 평정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이 안에 계신 주님의 길을 여는 열린 창이다. 평정 안에서 사랑이 빛나게 하라, 이것이 최고의 미덕이다. 



                   

고등학교 시절 기억에 남은 유일한 종교교육은, 나의 개인적 고민을 다 듣고 난 목사님께서 한 말씀이었다. ‘자네가 느끼는 문제점과 지고 있는 짐은 자네 혼자의 힘으로는 풀 수 없네, 어느 사람도 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네. 그러니 그 모두를 주님께 맡기고 자네는 해방되어야 하네.’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 말이 참 무책임하게 들였고 책임회피로 여겨졌다. 존재조차도 알 수 없는 주님께 어떻게 맡기며 주님은 그런 문제를 어떻게 다 들어주고 풀어준단 말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자라면 왜 여태껏 문제를 내버려 뒀단 말인가? 도저히 믿음이 가질 않았다.     

그러다 영국에서 영성 단체를 만나 그들과 접했을 때 내 안에서 스스로 한 구절이 흘러나왔다. ‘수고하고 짐 진 자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너무 많은 짐을 지고서 더는 버티기 힘들었을 때 구원의 손길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그 모든 짐을 내려놓아야 우선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그래서 고백했다. ‘저로서는 더는 이 짐들을 지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두 다 맡깁니다. 당신 뜻대로 하소서.’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내 안에 평화와 안식이 왔다. 진정한 해방감과 자유를 되찾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도 무의식적으로라도 짐을 졌다고 느끼는 자각이 생기면 바로 전지전능한 분께 모두 맡기고 의탁했다. 참 대단한 ‘빽’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믿고 맡김으로써 내 안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은, 인간과 근원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 확신을 통해서 가능해졌다.     

인간의 안목이 아닌 하늘이나 근원의 관점에서 다시 보니 젊음을 바쳐 고민하던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는 문제가 되지 않는 차원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렇게 찾고 바라던 내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어디서 오는지도 알게 되었다. 더구나 가슴에서 불던 찬 바람과 메울 수 없는 허무라는 구멍이 우주와 나의 바른 역할에 대한 확신을 통해서 어느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평화 그리고 마음의 평정이 내 안에 굳건히 자리 잡게 되었다. 이리하여 근원적 존재에 대한 이해와 믿음에서 나오는 내 존재의 평정과 평화를 그 어느 것도 방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믿음과 평안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땅과 세상의 쓰레기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하늘을 여는 창의 역할을 하며, 나라는 텅 빈 도구를 통해서 천상의 음악을 전하고자 한다.    



                

어릴 적 엄마는 시간이 없어 절에 가지 못할 때는, 부처님은 항상 내 가슴에 존재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내 안에 존재하는 경이로운 이에 대한 인식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냥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아주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내 안에 있는 뭔지도 모르는 어떤 특별한 존재로 인해 내가 특별하다고 여겨졌다. 나에게는 그것이 작은 샘물이 내 가슴에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인식이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느끼는 보편적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계기는 김영랑의 시 덕분이었다. ‘내 가슴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그 강물은 내 가슴에만 알 수 없는 샘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가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의 목마름을 적셔 주어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기도 했던 그 존재가 바로 내 안에 계신 경이로운 이였다.


이제는 경이로운 이에 대한 막연한 믿음에서 명확한 의식적인 인식으로 드러나며 내 삶의 바탕이 되고 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바로 그 현존으로 내가 특별해지며 우리가 모두 특별한 존재가 된다. 그러니 그분의 특성인 사랑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빛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빛의 성전으로 가는 7단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