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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Nov 11. 2022

빛의 성전으로 가는 7단계

인내

 인내     

인내는 겉으로 드러난 몸과 물질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다. 내 안에 계신 절대적 힘과 근원에 믿음을 두게 되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휘말리지 않으며 자신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따라서 세상사에 대해서 참고 견디며 의지력으로 이겨내려는 태도와는 다르다. 그보다는 모든 믿음과 중심을 내 안에 계신 경이로운 존재에 두기에 일어나는 일들을 차분히 바라보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런 인내의 힘은 근원과 하늘에 대한 굳건한 믿음에서 나오며 창조적 과정을 믿고 맡기는 태도에서 나온다. 따라서 세상 그 무엇도 나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유지하게 된다. 이런 인내는 고요한 평상심에서 나온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흔들림 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다. 그럼으로써 그 무엇에도 메이지 않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 

   

물질계도 완벽하게 만들어졌지만 잘못된 태도와 사용으로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사람의 몸도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으리만큼 아름다우며 인간의 몸을 통해서 신의 비밀이 드러나고 우주의 힘이 작동된다. 사람의 몸은 신의 성전으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존재의 법칙이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이기심과 욕망에서 벗어나서 내 안에 거하시는 경이로운 존재에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이 진정한 인내를 아는 자다. 인내 안에서는 사랑이 저절로 뿜어져 나온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인내라고 하면 참고 견디는 것이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애를 쓰며 하는 것을 말한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인내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미리 정해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노력하며 이루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빛의 성전에 이르기 위한 인내는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르다. 진정한 인내는 모든 일이 원래 계획된 바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지켜보고 기다리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 계획된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의 근원 또는 창조주가 계획한 바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근원적 설계와 원안에 맞게 창조의 큰 그림과 설계도 안에서 나라는 존재도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내 의지나 바람이 아니라 만물의 근원인 창조주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며, 내가 스스로 만든 계획과 바라고 원하는 의도와 생각을 먼저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며 존재의 빛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빛의 성전에 이르는 길은, 내 뜻이 아니라 창조주의 뜻과 의도를 내가 기꺼이 따르겠다는 결단으로 시작한 여정이고 모험이다. 그러기에 세상에서의 일들을 먼저 내려놓고 소중한 나를 비우고서,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한 존재인지를 다시 알아가고 찾아가려는 마음의 여유와 가슴의 휴식에서 출발한다. 


내 힘과 의지로 살았지만,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적이었고 원하는 바를 설령 이루었다 할지라도 종국에는 허무나 무의미의 늪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진정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진실한 나를 찾기 위해서 다시 근원으로 돌아와서 창조주의 뜻에 기꺼이 맡기며 따르는 것이다.     

 인간은 이 땅에서 번창하고 이 땅을 다스리는 존재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병들고 지쳐 쓰러지는 존재도, 가슴의 공허감으로 헤매는 존재가 아니라 삶의 기쁨과 영광을 누리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바로 그런 내 생명의 축복과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 빛의 성전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기에 빛이 내 안으로 스며들고 내 존재가 녹아들 수 있도록 세속적인 나를 비우고 내려놓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존재의 평안과 평화를 누리는 쉼과 여유 안에서, 이미 존재하는 축복에 눈 뜰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가을 햇살처럼 온화하고 따스한 존재의 빛을 느끼며 그 속으로 천천히 그러나 확신에 찬 걸음으로 들어감으로써 세상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인내를 아는 자이며 그런 확신 속에서 근원의 창조적 길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인내는 우리 신체와 우리를 둘러싼 물질적 환경과 관련된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신체를 혹사하거나 학대하는 사람도 있고 물질을 등한시하거나 천시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바른 태도가 아니다. 

우리 신체는 엄청난 지혜로 만들어졌으며 분명한 쓰임새가 있고 그 자체로 완벽하다. 그렇다고 신체적 욕망과 물질적 향락에 빠지는 것도 정신적 피폐를 불러올 뿐이다. 이 모두를 벗어나서 주어진 여건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더 큰 뜻에 따라 맡기며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돌보아야 한다.  

    

신체적 어려움이나 질병 아니면 물질적 고난과 부족함은 잘못된 사용으로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 그 모두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거하는 경이로운 이와 함께 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인내를 아는 사람이다. 

우리 신체는 안에 거하는 경이로운 이와 근원의 존재가 드러날 수 있는 완벽한 도구로 만들어졌다. 그러기에 신의 성전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 성전을 지키는 문지기 역할을 하며 내 안에 거하는 이가 외적이고 환경적인 요인으로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드러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우리 안에 거하는 경이로운 이는, 그 무엇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한다는 믿음으로 평안을 지켜 준다. 이렇게 인내는 외적인 어떤 요소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마음의 평정과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개의치 않게 된다. 이런 인내와 평정 속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변함없는 사랑을 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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