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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Jan 10. 2023

다시 깨치다

 어릴 적 어느 날, 우리 집에서 일하던 분이 독사를 잡아 왔다. 사람이 물리면 죽는다며 돼지우리에 던져버렸다. 나는 우리 돼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을 죽이며 바라보았다. 그렇게 느리고 굼뜬 돼지가 독사를 보자 천천히 움직이더니 삼켜버렸다. 정말 끔찍한 장면이어서 소리치다 눈을 떠보니 돼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언제나처럼 누워서 잠을 청하는 것 같았다. 

 나는 원망스러운 투로 왜 돼지에게 독사를 주었느냐고 묻자, 돼지는 독사의 독을 소화해 낼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우리 돼지를 먹기만 하고 잠이나 자는 하찮은 존재로 여기며 돼지 취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독사의 독을 소화해내는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기에. 이렇게 알고 보면 모두가 다 대단한 존재로 어느 것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대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돼지우리를 지나 화장실에 갈 때마다 우리 돼지에게 눈 맞춤을 하며 예를 갖추기도 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우리 돼지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다. 저렇게 순하디 순한 눈빛과 굼뜬 동작으로 어떻게 독사를 잡아먹는지 정말 존경스럽고 신기했다. 

    

 가을이 되면 학교 가는 길은 코스모스로 가득한 꽃길이 되었다. 각양각색의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모습을 보며 걸어가는 길은 파란 하늘과 더불어 상쾌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심술궂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고 나면 그 여리디 여린 코스모스는 다 쓰러져서 땅바닥에서 뒹굴었다. 정말 안타까워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리곤 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보면 코스모스가 누운 채로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놀라운 풍경이었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여린 꽃이 꺾인 채로 다시 기운을 차리고 꽃을 피우는 것이 너무나도 대견하게 여겨졌다.

 이렇게 자연은 놀라운 힘을 가지며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자아냈다. 도대체 저런 지혜와 힘 그리고 용기는 다 어디서 오는 걸까? 분명 모든 생명 안에는 내가 다 알지 못하는 무엇이 내재해 있고 어떤 신비로운 힘이 작동하는 것 같았지만 나로서는 더는 알 수 없는 것들로 궁금증만 더해 갔다.  

   

 그러다 스무 살이 넘어 대학을 졸업하고서야, 모든 창조물에는 형태(design)와 섭리(control)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품어온 많은 의문을 단박에 꿰뚫어 정리해주는 해답이. 그래 사물이 만들어질 때는 형태와 함께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가 있게 마련이다. 바로 그 원리가 나라는 생명체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내 몸이라는 형태는 어떤 섭리라고 하는 우주적 작동원리에 의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터득한 것이다. 어릴 적 내가 본 우리 돼지나 학교 길의 코스모스처럼. 마치 내가 혜안을 얻은 것 같은 우주적 섭리에 대한 각성이 내게는 새롭게 세상과 삶을 이해하게 된 눈뜸과 깨달음으로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그런데 차이점은 돼지나 코스모스는 바로 그 작동원리 또는 순리에 순응하며 살아가지만 나는 그 모두를 벗어나서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식으로 살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세상과 좌충우돌하고 많은 상처를 입히고 또 스스로 입은 것이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그게 다 별 소용없는 일들로 그야말로 이기심과 어리석음의 소산이라 여겨진다.      

 지금은 퇴직도 하고 나이가 들어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젠 그 자연의 순리를 찾아가고 우주의 작동원리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다시 깨닫게 된 것이다.


 나의 신체라는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 계신 경이로운 이가 섭리에 따라서 나를 통해서 드러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길을 열어주는 일이 내가 할 일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 길만이 내 삶이 천지의 원리에 순응하는 가치 있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순리며 나라는 개체가 만들어진 의도로 그야말로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인 천지인은 이렇게 연관되어 하늘의 원리가 나를 통해서 이 땅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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