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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Jan 01. 2023

뜻밖의 선물

 어느 날 버려진 화분을 발견했다. 쓰레기장에서 쓸만한 물건을 찾아서 재활용하고 필요한 사람을 찾아주는 습관이 있는지라 늘 눈여겨 살펴왔지만, 살아있는 화분이 버려진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도 지나치게 무성히 자라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웃자라있었다. 아직도 살아있고 잎사귀가 매력적이어서 큰 가지는 잘라 내가 키우기로 했다. 마치 화가가 배색을 잘해 놓은 작품처럼 여간 재미있지 않은 잎사귀들이 내 구미를 한껏 당겼다. 

 더구나 국화마저 져 버린 한겨울에 화려한 색상이 꽃만큼이나 예쁘고 화사해서 내 마음에 쏙 들어서 선물로 여기며 곱게 안아 모셔 왔다. 주인에 의해서 버려진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주고 다독여 주며.     

 오랫동안 화초나 식물과 함께했지만 내가 이들을 돌보는 방법은 다 똑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 날을 정해서 물 주는 것이 모두였음에도 제법 잘 키웠다, 종류에 상관없이. 그게 내가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의 최대치로 여기며. 

 그런데 이 친구는 까탈스럽게 며칠만 지나도 잎이 축 늘어져 쳐지고 생기를 잃어 다시 물을 주어야 하는 별종이었다. 식물 대부분은 내 방식에 적응했는데 이 친구는 도리어 나를 길들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아주 낯선 방식으로. 처음엔 모른 척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요구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볼수록 색상이 아름답고 색의 배합이 재미있어 나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래서 찾아보니 이름은 콜레우스 페인티드 레이디라고 한다.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리고 수생식물같이 물을 좋아하며 실내 공기 정화작용이 있는 식물로 꺾꽂이도 가능하다고 한다. 어머나 세상에! 나에게 이다지도 잘 어울리는 꼭 맞는 선물을 누가 보내준 것인지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이다.     

 요즘 사람들은 반려 식물이라는 말을 흔하게 사용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식물과 동물은 언제나 내 삶과 함께했기에,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릴 적 농촌에서 자란 덕에 얻은 자연스러운 태도인 것 같다. 


 마당이 없는 아파트로 처음 이사 왔을 때, 편리함도 좋았지만, 특히 춥지 않고 따뜻함이 마음에 들었지만, 답답하고 갑갑하며 공기가 텁텁해서 시리지만 정신 바짝 들게 하는 상쾌한 공기가 그리웠다. 특히 달과 별을 볼 수 없고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이 당황스럽고 허전하며 삭막해서 때로는 숨쉬기가 힘들다는 느낌조차 들었다. 그러면 버스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서 자연에 가까운 종점까지 가서 들판이나 야산을 미친 듯이 헤매다 오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화초를 기르게 되었다. 내 화분 중에는 서울에서부터 키워온 40년이 넘게 함께한 것도 있다. 그래서 한 친구는 그 화분은 나에게 자식보다 더한 존재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항상 같이 지냈기에 익숙해져 버린 친구이자 동반자다.  

   

 나는 페인티드 레이디의 다양한 색감의 배합과 조화가 그렇게 신기하고 흥미롭게 느껴진다. 마치 분꽃이 유전적 변이로 다양한 색깔의 조합을 드러내는 것처럼. 극단적인 원색에서 화가가 장난스럽고 짓궂게 배합해서 보란 듯이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만들어서 전시해 놓은 작품 같은 느낌에 신의 그림자조차 느껴진다. 

 그래, 저런 다양성과 조화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름과 차이가 주는 풍성함과 조화 그리고 넉넉한 공존이 나의 좁은 시각과 제한된 시야를 넓혀주며 부드럽게 일러주고 있다, 삶은 이렇게 넉넉하게 이어지는 것이라고.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지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울 수 있는가를.     

 특히 요즘처럼 무채색의 단순함에 싫증 나고 생기를 잃어가는 시절에 한뿌리에서 자라도 이렇게 다르고 다름에 의해서 풍성할 수 있다고. 종의 다양성 부족이 지구가 처한 기후 위기와 식량부족 그리고 종자의 보존이라는 엄청난 위기를 실감하는 사람들에게, 식물 종의 다양성만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처한 다양한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현실 앞에 한 그루의 연약한 식물이 웅변보다 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조물주인 신은 모두에게 축복을 내리고 모두를 그의 창조물로 품어주며 사랑하는데, 하물며 인간이 이러쿵저러쿵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신의 창조물을 함부로 판단하고 모독하지 말라고, 모두가 절대적 존재가치를 지니고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모두를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의 존재가 전하는 축복에 눈을 뜨고 받아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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