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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Dec 20. 2022

여성 한의 해독제

 어릴 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어머니의 태도로 어머니는 마치 자신이라는 존재와 삶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라는 이기심과 에고가 없는 사람 같았다. 뭐를 사도 내 것만 사고 나와 가족 것을 챙기며 자신은 언제나, 됐다 아니면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대단해 보여 존경했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내 것과 나를 먼저 생각했기에.


 좀 더 자라서 심리학과 정신 위생을 공부하면서 다시 본 것은 어머니는 이기심과 에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처럼 깊이 눌러 억압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번씩 뚜껑이 열려 폭발하기도 하고 우울해 보이기도 했고, 각종 신경증적 증세를 나타내곤 했다. 쉽게 말하면 아주 깊숙이 억압해서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러는 것이 좋은 아내와 엄마 그리고 좋은 며느리가 되는 길이라 여겼다. 이런 일은 남성 중심적 사고에 의해서 더욱 강화되어 여성에게는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고 미화되었다. 

    

 ‘한’은 한국인만의 정신적이며 심리적인 증상이라고 한다. 왜 한국 사람 특히 여성에게는 이렇게 한이 맺히고 쌓이는가? 한국의 전통 사회가 여성의 눈, 귀와 입을 막았기에 그리고 순종을 강요하며 억압해 왔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중세의 노예처럼, 복종하고 따라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삶의 부산물들이 차곡차곡 쌓여 ‘한’이라는 응어리가 맺힌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심리학에서는 쌓지 말고 그때그때 표현하라, 말로 드러내라고 한다. 그러나 적절한 표현 방법을 모르기에 대부분은 한번 터지면 가관으로 온 집안이 시끄러워진다. 어머니는 성격이 유순하고 또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셨기에 그러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벙어리처럼 냉가슴만 앓던 것같이 각종 신경증적 증세로 나타나기도 했다.     

 한국인 부인을 둔 외국인 남편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온순하고 착하며 헌신적인   사람이 한 번씩 완전히 헐크가 된다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보고 배운 바가 있기에 자신을 억압하고 눌려오다 폭발하는 것으로, 외국인 남편이나 가족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신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다른 사람을 탓하고 방어하기에 앞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당사자가 해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삭혀야 할 것은 삭히고 버릴 것은 털어버려야 한다. 

 삭힌다는 말은 깊은 뜻을 가진 표현이다. 곱씹어서 확정 편향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발효시켜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비수와 같은 독성을 지닌 말이 시간과 함께 발효과정을 거쳐 생명을 키우는 거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런 발효과정과 거름의 최대 수혜자는 본인 자신이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 어머니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아버지나 다른 가족을 탓하지 않았다. 내가 불만에 차 불평을 해도 항상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런 어머니의 태도가 나에게도 언제나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태도를 기를 수 있도록 도왔던 것 같다. 

 이렇게 숙성 과정을 통해서 이해와 통찰력을 얻음으로써 결국은 삶에 대한 여유를 회복해서 좀 더 초월적 자세와 진정한 인내심을 기르게 된다. 그러나 대다수가 여기까지 이르지 못하고 중도에 좌절하기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에 상처가 깊어지며 곪아가게 된다.   

  

 요즘의 젊은 세대는 그런 어머니를 통해서 보고 배웠기에 희생이나 양보 어느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우선이며 먼저다. 그래서 자식이나 가족도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양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더 나아진 것이 있는가? 뭐가 더 좋아졌는가? 여성들도 자신의 기량대로 살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무책임해졌고 더 이기적으로 변해서 또다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게 길이 아니며 바른 답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기에.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삶을 넘어서서 좀 더 온전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삶을 통해서 상처받고 시들어버린 사람이 아니라 더 풍성하고 충족한 삶을 가꾸기 위해서는 작은 이기심을 넘어서 타인이나 특히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는 족쇄도 넘어서 더 본질적이고 더 온전한 삶의 형태를 스스로 가꾸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원하는 본질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기 앞에 주어진 일들과 매일의 사건들을 정직하고 열린 자세로 바라보며 반발보다는 찬찬히 살펴보며 발효시킬 수 있는 용기와 여유가 필요하다. 삶의 부산물인 쓰레기들을 잘 발효시켜 생명을 키우는 거름을 만들어내듯이 긴 시간의 자기 성찰과 정직한 직면이 요구된다. 그럼으로써 마침내 별것 아닌 일에 얽매이거나 상처받지 않고 털어버리며 더 넓은 아량으로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적 성숙과 단련이라는 발효기술을 통해서 변환해 나가려는 자기 성찰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태도는 내 삶을 희생자로 만들거나 남 탓으로 돌리지 않으며, 내 삶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깨달음의 과정이며 내 속에 존재하는 빛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나는 이 땅에 어쩌다 실수로 떨어진 별똥별이 아니라 당당히 나로서 해내야 할 의무와 사명을 갖고 태어났으며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임무를 기꺼이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당당하고 즐겁게 기꺼이 살아갈 것이다. 이런 당당함과 책임 있는 모습이 우리가 가슴에 품고 있는 우리의 본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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