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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Apr 04. 2023

내 마음의 샘물 18

 사실 내가 사회학과 사회복지를 공부한 이유는 어릴 적 본 주변의 가난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빈곤에서 벗어나서 모두가 배불리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가 나에게는 사명감으로 다가왔었다. 

 그래서 사회정책에 관심을 두고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들을 공부해 나가다가 결국 알게 된 결론은 왜 ‘가난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고 했는지’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귀로에 서게 되었다. 

     

 내가 대학원을 다니던 시기는 독재정권 말기로 10.26, 12.12 사태로 이어졌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정신 사나워 답을 찾을 수 없어 영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런던의 동쪽은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이민 온 가난한 사람들로 북적였고, 옥스퍼드의 젊은 지성인들이 구제 사업을 시작해서 세계적인 모델이 된 복지관의 원조 격인 헐하우스는 내가 생각했던 대안이 못되었다. 사회정책과 젊은 혈기와 지성으로 시작한 빈곤과 가난에 대한 방안과 구제책들은 모두 대안이 못 된다는 것만 확인하고 망연자실했다. 

    

 정말 더는 길이 보이지 않았고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고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껏 내가 추구해 온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만 확인한 꼴이 되었으니, 그렇다면 길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참을 혼돈 속에 헤매다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노자의 말씀이 생각났다.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라질 뿐이다’ 한동안 내가 붙잡고 씨름했던 화두로 내 의식의 지평을 확장해 준 강력한 한 문장이었다. 그래, 현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길을 벗어나서 문제를 넘어서 문제가 되지 않는 초월적 능력이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인간 이성과 지성을 통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 아닌 초월성과 그 너머의 길이 저 멀리서 손짓하고 그 길이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현실적 가난에 얽매이지 않고 넘어서서 풍요롭게 사는 방법, 가난과 빈곤이 인간을 피폐시키지 않고 더 큰 인간 정신을 발휘하게 하고, 가난에도 불구하고 품위를 유지하며 행복감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문제가 더는 문제가 되지 않고 사라지는 단계와 초월하는 길이 새로운 대안으로 보였다. 그래,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사회복지와 사회과학에서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 가장 먼저 꼽는 것이 ‘자아정체성’이다. 실로 인간 삶에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자아정체성에 대한 개념과 신념이 가장 큰 행동 선택과 결정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그냥 세속적인 인간만이 아닌 신성과 불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자아정체성에 대한 신념은 내 삶 전체를 바꾸는 강력하고 효율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내가 신성을 가진 존재라면 나는 그 신성을 일상의 삶 속에서 표현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다른 모든 생명체도 동일한 신성을 가진 존재로 존중해야 한다는 관점이야말로 내 삶의 기본 바탕이 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실이라는 상황은 그 어떤 것이든 간에 결정적 요소가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 하는 자아정체성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어떤 상황이나 처지도 넘어서 나를 지켜나갈 수 있게 한다. 신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인간 정체성이야말로 내가 세상을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자 귀착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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