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수도시설이 없던 시골에서는, 학교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물을 길어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옆 동네 모란당 우물물을 사용하다 드디어 학교 운동장 구석에 펌프가 설치되었다. 펌프에서 물을 긷기 위해서는 먼저 마중물을 한 바가지 붓고 펌프질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 가슴속 샘물을 긷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샘물을 길어 올리기까지는 마중물을 통해서 샘의 존재를 기억하고 알게 된다. 처음 샘을 파다 보면 구정물이 한참 동안 나오게 된다. 그러면 인내심이 부족하고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정말 샘물이 있는지조차 의심하기도 한다. 그래도 계속해서 파다 보면 드디어 맑은 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서 나오는 어두운 기억과 개인사적인 부정적 경험이 흙탕물로 드러난다. 그러다 마침내 그 모두를 뚫고서 맑은 물길을 잡아나가게 된다. 이런 비유는 마치 샘을 파는 과정이 지난 한 과정처럼 여기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청량한 샘물은 언제 어디서나 반짝이는 빛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서의 경험과 기억으로 인한 진흙탕도 맑은 물로 어느새 씻겨나가게 된다. 맑고 순수한 물, 물의 상징인 진리만이 어둠을 걷어내고 오염에서 벗어나서 의연하고 담대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서게 할 수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며 오아시스 없는 사막은 무덤과 같다. 사막 같은 인간 세상에도 도처에 있는 오아시스 같은 맑은 샘물이 다른 지류들을 만나 강물 되어 흐르기에 갈증이 축여지고 생명체가 꽃 필 수 있다.
우리 곁에는 강물 되어 흐르는 생명수가, 발견되고 개발되어 우리를 통해서 흐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천상의 물길만이 진정으로 생명을 충족시키며 이어나갈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