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샘물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나 같은 현상에 대해서 다른 표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떤 이는 샘물 대신 ‘내 안에 존재하는 경이로운 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신 또는 하나님’이라거나 ‘부처’ 등 자기식의 표현을 동원할 것이다. 다 괜찮다, 이 모두는 하나로 같은 존재를 지칭하니까.
물은 진리의 상징이다. 진리란 ‘존재하는 것’ 또는 이미 작동되는 ‘원칙, 원리 또는 법칙 아니면 동양적으로 표현하면 도’를 말한다. 도는 사람이 마땅히 따라야 할 길 또는 도리를 말한다. 진리는 이미 존재하며 자연의 원리와 법칙도 존재한다. 우리 인간이 만들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단지 따르고 받아들이며 순응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진리와 도가 내 안에서 어떻게 작동되며 내 삶에서 어떻게 따를 것인가? 초자연적이고 초월적 현상을 인간의 좁은 머리와 마음으로 이해하고 조작하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짓이다. 그보다는 이성과 사고를 넘어 직관이나 깊은 정서적 감응, 생명의 충동 아니면 소위 말하는 종교적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고 믿게 되며 익혀가고 확장해 나가게 된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도 초월적 현상도 실제 생활에서는 가장 실용적이고 실질적으로 드러난다. 예수의 기적이 다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이상한 환상에 젖기보다는 오히려 지금 여기에서 현실적으로 알고 있는 바른 선택 과정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 마음을 모으고 비우게 되면 어디서 오는지는 알 수 없는 어떤 지혜, 영감, 아니면 예감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것을 채널링이나 텔레파시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간절한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라고도 한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든 간에 그 핵심은 결국 사랑이며 빛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내 욕심대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삶이 아닌 죽음의 길이다. 인간은 실제로 정교한 레이더와 같아서 우주와의 연결 속에서 도의 길인 참과 자비로움 속에서 빛과 사랑을 전한다.
이렇게 우주적 지성은 내 안에 있는 샘물과 하나 되며, 여러 갈래의 물길들이 모여 강물 되어 영원의 바다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