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샘이 흐른다는 것이나 경이로운 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이 땅에 묶여있는 존재만이 아니라 더 높은 천상이나 우주로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천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연결 끈과 고리 내지접착제가 존재하는 것과 같다. 즉, 내 안에 초월적 특성인 신성이 존재하며 그 신성이 더 높은 차원의 신성과 연결됨으로써 존재적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 내 존재의 본질이다.
예수는 인간의 몸으로 그런 신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드러낸 모범 사례다. 부처는 불성을 다른 종교에서는 다른 표현을 하지만 같은 실체에 다른 옷을 입힌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본질은 내 안에 신성과 불성이라는 초월적 특성이 존재하며 그러한 본질이 나를 통해서도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내 안에 신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태도와 행동 가짐이 달라진다. 거룩한 존재인 내가 함부로 행동할 수 없고 삿된 마음을 가질 수 없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최고의 예우와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게 된다.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쉽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자신 안에 아버지와 함께한다고 했다. 내 안의 샘물 또는 경이로운 이와 연결된 상태를 말하며 그럼으로써 더 큰 우주적 지성과의 합일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서 더 큰 사랑과 지혜로 연결될 수 있게 된다.
인간 속성의 상태는 신뢰하기 힘들며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상태를 초월해서 본래 만들어진 신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은 인간 속성의 자기 작동을 따라서가 아니라 그 한계를 벗어나서 더 높은 차원과의 연결을 통해서 초월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천국이 나를 통해서 표현되며 이 땅에서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하나가 된다.
모든 성현이 바라고 시도한 것이 바로 이런 상태가 아닐까? 이 땅에 사람 간에 사랑과 지혜 그리고 이해와 용서가 강물 되어 흐름으로써 모두가 자신에게 가능한 존귀한 특성 모두를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 땅이 아름다움과 자비가 넘치는 곳으로 바뀔 수 있게 될 것이다.
작은 단위로는 가족 간에 그리고 친한 친구 간에 사랑과 우정이 나누어질 수 있는 바탕은 바로 이런 존재적 특성이 표현되고 나누어질 수 있을 때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잘못과 실수에 대한 용서와 포용 그리고 서로의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면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관계를 통해서 작은 공동체를 넘어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