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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May 01. 2023

내 마음의 샘물 23

 일요일 아침 서둘러 역으로 나갔지만, 표는 역시 무궁화호 입석만 남아있었다. 거리가 가깝기에 서 있어도 되지만 4호 칸으로 가니 앉을 수 있었다. 의자가 모두 창 쪽으로 향해 있어 바깥 풍경을 감상하기엔 더 좋았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가고 그것도 초등학교 동창회를 가는 기분에 들떠 모든 게 흡족하고 기분 좋았다. 마치 일본의 로맨스 관광열차를 탄 기분 같았었다.  

   

 열차 안 젊은이들은 여행에 지쳤는지 조는 사람이 많았고 나머지는 무슨 일을 하는지 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도 낙동강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있다가, 목적지에 접근하자 내릴 문을 찾기 위해 고개를 들어 둘러보았다. 그러다 기가 막힌 장면을 보고 말았다. 


 저쪽에 한 지체장애인이 외발로 한 손으로는 목발을 짚고 다른 손으로는 기둥을 잡고서 겨우 버티고 서있었다. 어머나! 내가 왜 저분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한 번만 고개를 들어 둘러보았어도 바로 알 수 있었을 텐데, 내 기분에 취해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내 앞과 내 생각에만 빠져있었다. 

    

 그분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이들도 많았고 중년의 어른들도 많았지만, 모두가 외면한 채 그분은 힘겹게 서서 피곤해 보였다. 마음으로 주변에 있는 젊은이들도 원망해 보고 어른들도 괘씸했다. 내가 멀리서 큰소리로 외쳤다. ‘이리 와서 여기 앉으세요, 제가 미쳐 못 봐서 죄송해요.’

그분은 괜찮다며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조용하던 기차에서 큰 소리가 나자 사람들은 나를 흴 것 쳐다보고 힘겹게 다가오는 장애인도 무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젊은이들은 왜 그분을 외면했을까? 예의가 없어서? 아니면 본인들도 지쳐서? 아니면 멀리 가기에?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중년들은 왜 양보하지 않았을까? 본인들도 피곤해서? 나이 든 어르신들은 왜 젊은이에게 장애인을 위해 양보하라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젊은이들을 잘못 건드렸다가 봉변당할까 봐? 어른들이 정중하게 양보를 구할 때 과연 젊은이들이 화를 내며 반발할까? 온갖 상념들이 내 머릴 어지럽혔다. 그러나 다른 사람 탓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생각과 기분에 빠져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하고 배려한다면 모두가 다 안전하고 편안할 수 있을 텐데. 다른 사람과 이웃의 처지에 대한 약간의 공감력만 있어도 모두가 마음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서로를 외면한다면 결국 모두가 불행해지고, 서로 의지하고 믿지 못한다면 결국, 서로가 두려운 존재가 될 텐데. 우리도 모두 예비 장애인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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