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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화 Apr 30. 2023

도리안 블랙을 기리며

 테드 블랙은 도리안의 개명 전 이름으로, 나에게는 테드가 훨씬 더 익숙하다. 그는 얼마 전 거의 평생을 보낸 선라이즈를 떠나 별이 되었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부드럽고 친절한 태도를 지닌 신사 중 신사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그의 형님이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된 것 같았다. 

     

 그는 언어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영어 자료들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다는 말을 그 당시 선라이즈 랜치 지도자였던 로저 드윈튼에게 하자 로저는 테드를 나에게 보냈다. 테드는 영어로 된 문단을 한국어로 번역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내가 번역한 한글만 보고서 영역을 해보라고 했다. 이렇게 교차 번역을 몇 시간이나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에게 귀중한 자료들을 톤의 손상 없이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번역을 허락해 주었다. 그래서 자료에 대한 한국어 번역이라는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영광스러운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나와 테드와의 첫 인연은 조금 어색하게 시작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선라이즈 랜치에 도착한 날 밤에 나는 심한 복통으로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그러다 새벽에서야 그곳 사람들에게 발견되어서 겨우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날 아침 식사 시간에 나에 관한 소문을 들은 테드와 부인 클라우디아가 내 방을 찾아와서 어튠먼트를 해 주었고, 저녁 식사 후에도 내 방에 와서 안부를 물어주었다. 그는 그렇게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나와는 마치 친척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그는 송별 파티를 열어주며 장거리 어튠먼트를 매주 수요일 그곳 시간 아침 10시에 하겠다고 해서 수년간 지속했었다.  

   

 내가 선라이즈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아침 식사에 초대해서 갓 구운 와플에다 메이플 시럽을   듬뿍 발라주었고 함께 쇼핑하고 나들이를 하며 그 댁에서 파티가 열릴 때마다 초대되는 단골이 되었다. 그가 나에게 베푼 친절은 나라는 개인에게 보낸 애정이기보다는 나로 대표되는 한국과 동양 전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었다. 

 그와 부인은 서양인임에도 불구하고 동양적 특성을 많이 지닌 분 들 이어서 나도 문화적 차이나 거부감 없이 친족 비슷한 가까움을 나눌 수 있었다. 그의 부인 클라우디아는 화가로 짙은 색상의 과감한 터치의 수채화를 주로 그렸지만 내가 장난 삼아 그리는 그림에서 드러나는 여백을 반기고 존중해 주며 동양적 특성에 대한 외경심이 많았다. 

    

 그가 떠난 선라이즈는 나에게는 마치 친한 친척이 없는 고향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렇게 친절하고 따뜻한 인물들이 말씀을 충실히 실천하며 조용히 그 자리를 평생에 걸쳐 지켜왔기에, 그곳의 영성이 유지될 수 있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이어갈 것이다. 앞에서 드러나는 몇 사람만이 아니라 그곳을 지키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의 손길과 가슴으로 가꾸고 이루었기에 그곳은 많은 사람에게 고향과 같은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었다.      

 그가 나에게 그리고 나를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보낸 애정과 사랑이 이곳 우리의 삶에 무의식적인 선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의심치 않는다. 그런 수많은 분의 사랑과 기도로 지금 우리가 이만큼의 천국과 말씀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감사함에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 길을 찾는 많은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말씀으로 이끌어 줄 책임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시공을 넘어서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며 이 땅에서의 천국을 이루어 나갈 것이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그의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가 나에게 화답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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