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삶 또는 죽음
어린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살펴보면 신기하게도 스스로 뒤집고 기다가 어느 날 서서 걷게 된다. 이것은 부모가 가르쳐서 아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하며, 아이 속에 있는 생명의 작동원리에 따라서 그렇게 성장한다.
이런 과정은 마치 한 톨의 씨앗이 적절한 조건에서 스스로 발아하고 꽃 피우며 때가 되면 열매 맺는 것과 같다. 생명은 그 자체 안에 기본 설계와 작동원리가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인간의 간섭으로 망가지거나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되고 대신 사람이 만든 논리로 대체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의 논리는 모두 인간 개인의 욕망과 이기적인 목적에서 파생된 인간의 스스로 만든 자기 논리다. 나에게 주어진 삶은 내 것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며 자유를 만끽하고 나의 목적과 스스로 중요시하는 가치를 실현해보고자 한다. 이런 태도는 생명 자체의 질서와 논리를 무시한 채 이기심과 자기 중심성에 근거해 있다.
그래서 그런 인간적 욕구와 욕망에 기반해서 사회를 구성했지만, 그 속에서 함께 편안하게 살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이전투구를 벌리고 있다. 그에 반해 자연은 비교적 균형상태를 유지하며 나름의 법칙대로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있으며 공존하고 공생하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하늘의 법칙이 인간사회에서는 불가능한 것일까? 생명의 특성을 무시하며 제쳐두고서 인간의 이기심 내지 세속적 자아에 기반한 인간의 노력은 성공적이지 못하다. 지금의 현실이 바로 이점을 증명하고 있다.
어린아이도 어릴 적엔 자아가 약해서 생명의 전개 과정에 순응하지만, 점점 커감에 따라 자아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부터 세속적인 성취를 위한 자신만의 계획을 만들어간다. 이때부터 생명 자체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려 애쓰게 된다. 그래서 돈에 집착하거나 명예나 기타 개인적인 세속적인 목표를 위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버거운 것인가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삶인가? 아니면 전쟁을 벌이고 삶을 낭비하며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엇을 위한 삶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나무가 성장하고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 그리 애쓰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는 것 같다. 모든 과정이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그에 비해 인간의 삶은 팍팍하고 혼돈 속에 있다. 이럴 때, 생명의 특성이 무엇인지, 죽음이 아닌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 보게 된다.
마틴 세실은 그의 시에서 아주 담백하게 여기에 대해서 전하고 있다.
미워하고 거짓말하고 분노하는 어떤 순간도
죽음의 순간이다.
사랑하고 베풀고 친절한 어떤 순간도
생명의 순간이다.
우리의 이런 순간들을 모두 합해보면
간단하게 답이 나올 것이다,
삶인지 죽음인지를
그렇다, 삶은 이렇게 순간순간을 생명의 원리로 살아가는 것이다. 순간순간 대면하는 우리의 경험과 우리가 살아내는 것이 진정한 삶인지 아니면 죽음인지를 정직하게 그대로 드러낸다. 우리는 매 순간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야 하며 그래서 생명력을 이 땅에 드러내야 한다.
인간의 자기 충족적인 모호한 미래를 위해서 우리의 삶을 억압하고 지연시킬 것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순간들을 충실히 살아야 하고, 나와 내 것만을 위해서 다투고 싸울 것이 아니라 베풀고 나누며 함께 살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삶이다.
이런 삶은 도덕적 덕목으로 머리로 생각하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사실로 드러나야 한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길은 바로 우리가 자기 개인의 목적 달성이라는 이기심과 환상에서 벗어나서 생명의 원리와 함께할 때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