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와 백합

by 최선화

봉선화와 백합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라는 봉선화 노래는 우리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였지만 왠지 모를 처량함과 서러움이 서려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만든 노래라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배경을 빼고서라도 봉선화는 그 모양새가 소박해서도 그렇고 특히 장마철에 비를 머금고 서 있는 모습 그 자체로도 약간 풀이 죽어있고 처량해 보인다.

봉선화는 시골집과 여름의 상징과도 같은 꽃이다. 특히 여성들은 엄마, 할머니, 언니들과 함께 봉선화 꽃물을 들이던 기억 덕분에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려 주기에 모두가 반긴다. 시골집에 봉선화를 심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뱀이나 해충의 침해를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바로 울 밑에 심어 뱀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어떻게 여린 봉선화가 그런 큰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고 시골집의 단점을 봉선화가 예쁜 모습으로 보완해 준다니 더욱 정감이 간다. 여름이면 봉선화를 보며 장마의 지루함과 한낮의 열기를 달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눅눅한 장마철엔 더욱 봉선화가 피어나는 시골집을 그리워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달맞이 언덕 일원에는 장마철에 봉선화와는 사뭇 대조적인 새하얀 백합이 지천으로 피어나 장관을 이루고 있다. 아마도 달맞이 언덕의 문텐 로드를 조성할 때 구청에서 심었던 것이 이제는 저절로 퍼져서 특히 장마철이면 곳곳에서 피어나 달맞이 언덕의 품격을 얼마나 격상시켜주는지 모른다. 며칠 전에는 집 앞 언덕을 오르다 감탄하며 멈추어 섰다. 양쪽 언덕길 옆으로 백합이 다소곳이 줄지어 서 있어서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군대도 못가 보았고 대단한 열병식을 받을 만큼의 권력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백합이 줄줄이 피어있는 모습은 그 어떤 사열보다 더 아름답고 경탄스러웠다. 게다가 멀리서부터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풍겨오는 향기의 품격이 고결하기까지 해서 장마로 인한 후텁지근함과 쾌쾌함을 몽땅 날려주었다.

흰 백합꽃은 그 모양새가 교회나 성당의 제단에나 어울릴 것 같은 격조 있는 자태로 왠지 모르게 보는 이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하고, 마음을 다시 한번 가다듬게 하는 위력이 있다. 그래서 지나가는 길손에게도 그 존재만으로도 가볍지 않은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길 언덕배기나 길섶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곳곳에 숨은 듯 피어나 조용히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수녀님 같고, 기대하지 않은 반가움으로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눅눅한 장마철, 모두가 지쳐가는 계절에 저리도 고고한 자태로 우아함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며 내 흐트러진 마음도 다시 가다듬게 된다. 장마철 해안가의 눅눅함과 잦은 해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달맞이 언덕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이 백합꽃이 줄지어 피어있는 언덕길을 비를 맞으며 향기에 취해 걷거나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고향을 그리며 시골집을 장만하려고 여러 번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현실적 여건들이 맞지 않아서 섭섭함을 속으로 삭이고만 있었다. 그러다 마음을 고쳐먹고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즐길 수 있는 만큼 즐기고, 안 되는 것은 적당히 합리화하며 넘기고 있다. 그렇게 할 줄 아는 것이 나이 든 사람의 지혜가 아닐까? 다른 방도가 없기에 접을 것은 접고, 할 수 있는 것과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노년기가 만족스럽고 행복할 수 있는 이유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많은 과정을 거치고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서야 도달한 경지다. 이건 포기나 절망이 아니라 슬기로운 현실적응이다.

시골집에서의 봉선화와 도시의 백합화는 전혀 대조적인 이질적인 꽃이지만, 그 모두가 내 눅눅한 여름과 더위로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이렇게 자연이 전하는 위로와 치유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이런 혜택을 우리 세대만이 아니라 모두가 일상 속에서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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