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적 시각

by 최선화

초월적 시각


초등학교 때부터 서양식 교육을 받다 보니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교육을 받아왔다. 이성과 논리에 근거한 과학과 수학을 배우면서 직관과 초월성은 비합리적이며 과학적이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어 경원시되었고 교육과정에서도 제외되었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 보면 세상은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못했다. 그보다는 감정이 더 판을 치며, 내 경험에서도 논리적 추론보다는 직관적 판단이 더 자주 사용되었다. 그러다 보니 삶에는 뭔가 과학이라는 것을 넘어서는 직관이나 초월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래도 학교에서의 공부와 문제 해결법은 언제나 이성과 과학적 접근으로 머리를 중심으로 다루어졌기에 그 한계성에 부딪혀 갑갑증이 더해만 갔다.

20대에 주 관심사는 사회문제의 해결이었고 그래서 사회학과를 다녔다. 그 당시의 한국 사회는 군부독재의 횡포가 정점에 달한 시기였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하려는 마음으로 대학원에서는 사회복지를 택했다. 뭔가 길이 있을 것 같아서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빈곤의 심연과 10.26, 12.12를 통해서 드러난 인간 군상의 일그러진 모습들을 목격하고서 절망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어떤 글귀를 접하게 되었다.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라질 뿐이다.너무나 충격적인 말로 머리를 가격 당한 것 같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온갖 방법론과 정책론을 뒤지며 온 힘을 다 쏟았는데, 어떻게 이미 존재하는 문제가 사라진다는 것인가? 노자의 말이 아니었다면 단박에 무시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노자의 말이기에 그래도 이해해 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날부터 이 한마디는 나의 화두가 되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생각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밤낮으로 그리고 자다가 일어나서도 생각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그래, 맞아,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면 다른 형태로 바뀐 것뿐이고 문제 자체는 해결되지 않지... 차라리 문제가 되지 않는 차원에서 보면 이미 문제가 없는 것이지... 나의 화두가 풀린 것이다.

바로 이 시점부터 인간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과는 별개로 초월적 접근과 시각에 눈 뜨게 되었다. 그러면서부터 그렇게도 해결할 수 없어 보이던 문제들이 다른 차원과 시각에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배워온 논리와 이성이라는 합리성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부터 이 모두를 뛰어넘는 직관과 초월적 관점이 내 삶에 서서히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이런 초월적 시각은 삶의 과정에서 부딪히는 일상의 문제들에서 내가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면서 삶의 본질과 도에 접근하는 길은 학교에서 배워 온 합리적 방법만이 아니라 동양적인 지혜와 수행방법들을 통해서 더 빠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라는 말이 이해되며, 설명할 수 있다기보다는 그냥 알게 되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두라는 것도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데 유용한 방법이라는 것도 경험적으로 체득하게 되어, 잘 알지 못하는 것을 화두로 삼아 몰입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나이 들면서부터는 그동안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보는 눈과 태도가 더 넓어지고 깊어져서 세상은 논리나 감성만도 아니며 그 모두를 아우르는 전체적인 시각과 제3의 눈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사에서의 일을 일에 얽매인 똑같은 시각으로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지만, 초월적 관점과 한 차원 높은 위치와 다른 시각에서 보면 길이 보인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서 세상을 내가 알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바꾸려는 어리석고 소모적인 노력을 중단하고 인간 위에 존재하는 더 큰 힘을 믿고 맡기고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는 여유와 믿음도 회복하게 되었다. 인간의 노력만이 아닌 근원적 힘에 귀의해서 하나가 되는 것이 내 삶을 더 의미 있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믿음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미천하나마 실천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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