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의 성장

by 최선화

노년기의 성장

보통 성장이라고 하면 어린이를 생각한다. 아이들의 성장은 주로 신체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회적이고 지적인 성장도 함께 일어난다. 그런데 이런 사람의 성장이 대게 20대에 가면 거의 멈추어버린다. 그리고 더는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60이 넘어 은퇴한 후에도 나는 계속 성장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정신을 모으고 있다. 내가 관심을 갖는 성장은 물질적인 것도 신체적인 것도 아니다. 사회적인 것은 더욱 아니다. 나이가 들면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적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나 그런 외로움과는 달리 고독은 인간의 내면을 성장시키며 진정한 사람됨으로 이끄는 힘을 가진다. 그래서 존재의 고독을 누리며 영적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정신적 성장이라고도 하지만 나에게는 존재의 전체성이라는 측면에서 영적 성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젊었을 때도 여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그때는 내면의 의문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과 방편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많았다. 예를 들면,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에 대한 내 존재의 정체성과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서 생겨나는 많은 일과 갈등을 해결해 나가며 적응하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나가기 위한 내 나름의 탈출구였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단계와 시기에 적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순수하게 내 존재의 의미와 본래 지음 받은 대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성장 내지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내 나름의 삶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과정이다. 평생 관심을 가져온 분야의 일을 이제야 새삼스럽게 더 집중하고 더 초점을 모으는 것은, 내 삶의 또 다른 시기와 단계의 성장이고 배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익히 읽고 들어왔던 글도 다시 읽어보면 의미가 달라지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내 마음가짐도 달라져 행하는 바도 더 깊어진다.

더 낮은 자세로 더 넓은 포용력으로 사람과 사물을 받아들이게 되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하게 된다. 무시할 것은 잊어버릴 수 있는 결단력과 배짱도 커졌고 그동안의 경험에서 나온 쓸모없는 미련이나 희망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더 본질에 집중하고 마음을 모으고 포용하는 힘도 자라고 있다.

그동안의 삶의 경험과 모든 과정이 다 도움이 되고 내가 겪어야만 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으며 그래서 그것들로부터 배웠다는 사실을 감사히 받아들인다. 그러니 이제는 삶의 찌꺼기와 부산물들을 세월의 강물에 조용히 미련 없이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영광스럽다고 느낀 순간과 함께 굴욕적인 순간들도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떠나보내며 씻어 낸다.

생각해 보면 큰 어려움을 겪었던 일들이 결국 나를 더 성장시키고 더 넓혀주었다는 면에서 큰 축복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털어버리면서 비우고 정리하고 난 텅 빈 고요한 공간에 진정한 감사와 깊은 참회 그리고 기도가 자리하게 된다.

그동안의 삶은 생존을 위한 적응 그리고 의무와 책임 사이에서 힘들고 소란스럽고 바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두에서 벗어나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도 여유가 생겼고 몸과 함께 내 마음도 고요한 평화를 누리고 있다. 순간적인 감정의 회오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묶은 상처와 때를 벗겨내듯이, 마당의 잡초를 뽑듯이 천천히 부드럽게 다독여 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까지의 삶이 다 지금의 이 시간과 공간을 위해서 마련되어 왔다는 생각이 들어 겸허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어릴 적 깨끗이 정리된 빈 마당에서 무엇을 할지 궁리하던 마음으로, 절간의 텅 빈 마당이 나직한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 외에는 정적 속에 싸여있었듯이, 내 고요한 마음의 뜰에 진리의 말씀이 전해지고 느린 걸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순간들을 위해서 이제껏 바삐 살아왔고 달려왔다는 생각에 미소가 번지며 수고했노라고 다독여주게 된다. 새벽을 깨우는 교회의 종소리같이 산사의 북소리같이 은은히 전해지고 이어지는 말씀과 하나 되고자 하는 깊은 염원이 잔잔하지만 뚜렷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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