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되는 삶
내 학생 중에 한 사람은 어릴 적 백혈병을 앓았다. 오랜 시간의 투병 끝에 다행히 회복해서 학교로 다시 돌아오다 보니 다른 학생들보다는 연배가 좀 높았다. 투병 중에도 집안이 넉넉지 않아 가족들이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학생은 나이에 비해 너무나 성숙한 태도를 보였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혼자서만 열심인 것이 아니라 철이 없어 정신 못 차리는 어린 남학생들을 보며 이들에게 족집게 과외를 해주어서 전례 없이 모든 남학생이 원하던 계열로 갈 수 있도록 도왔다. 본인도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을 2번이나 합격해서 지금은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 학생을 보면 젊어서 고생한 것이 헛되거나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병상에 누워서 학교로 돌아올 날을 7년 동안이나 간절히 기대하고 원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삶이 허투루 낭비하기엔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학생을 보면 삶에 대한 태도가 뭔가 숭고하고 진지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다, 생사의 고비를 넘긴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가 지나온 치료과정에 비하면 공무원 시험공부쯤이야...
보들레르는 ‘시란 회복기의 삶이다.’라고 했다. 그냥 회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죽음에서 회복하는 사람의 삶이라고 생각된다. 죽음의 문턱에 가 본 자가 삶에 대해서 느끼는 바는 삶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하품하면서 사는 사람의 태도와는 다를 것이다. 모든 것이 생생하고 새롭고, 투명하게 보이며 고통마저도 감사히 여길 것이다. 살아있기에 고통도 느낄 수 있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이런 비슷한 경험들이 얼마든지 있다.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 우리의 일상이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지겨워하며 지낸 시간과 별일 없이 지나가는 일상이 사무치게 소중하다는 것을 루게릭병에 걸린 시인은 절절히 호소하고 있다. 이렇게 삶의 진가를 죽음의 문턱에서야만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걸까?
과연 삶이 당연한 것인가? 지금 내가 누리는 이 모든 삶의 혜택들이 과연 당연한가? 이 낡아빠진 질문을 이제는 진지하게 다시 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리도 당연하게만 느껴지던 일들이 차츰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별일 없이 넘어가는 하루가 고맙고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날 수 있어 고맙다. 언젠가는 이일도 나에게 전혀 당연하지 않을 날이 올 것이기에.
그래서 노인의 삶도 시가 되고 철학이 되어 위로와 치유를 전하는 명약이 되기도 하고 아니면 곰팡내 풍기는 폐기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느 것이 되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미리 알고 싶지도 않다, 때가 되면 스스로 드러날 것이기에. 그러나 지금은 움직여서 원하는 일을 처리해 나갈 수 있고 또렷하고 맑은 정신으로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고 사랑을 전할 수도 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가!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온다.
노인만이 내일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누구에게도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다. 어젯밤 뉴스에서 아프가니스탄의 한 시민이 ‘하루 만에 내 삶의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하며 목숨만을 건지기 위해서 맨몸으로 공항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오늘 하루 내내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감행한 탈출에 성공했는지, 자꾸 마음이 쓰이며 두 손을 모으게 된다. 우리 모두도 형태는 약간 다르겠지만 그렇게 빈손으로 비행기를 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주어진 오늘을 감사히 여기며 믿고 살뿐이다. 그러니 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이것이 전부인 양 혼신을 다해 살아가게 된다.
노년기의 삶은 그래서 회복기의 삶처럼 시가 되고 철학이 되며, 삶이라는 장편 시의 반전과 하이라이트를 만들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