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이 아닌 존재적 삶

by 최선화

생존이 아닌 존재적 삶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나도 스스로 원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이가 들어서 퇴직하게 되었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연금과 보험도 타게 되었다. 시원섭섭했지만 별일 없이 정년을 맞은 것에 안도했다. 퇴직하고 뭘 할지를 물어오면 농담처럼 그냥 쉬고 놀 것이라 했다. 사회적으로 공인받은 백수이기에 아무도 내가 노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고 나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놀고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퇴직하고 나서 해보고 싶었던 것은 ‘이제껏 못해 본 것들과 미루어 온 일을 하나하나 해보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시간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사는 것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시간을 쪼개고 쪼개면서 시간에 매여서 살게 된다. 매시간을 체크하고 어떤 때는 분 단위로 나누어서 뛰게 된다. 이런 시간의 노예에서 벗어나서 하루를 온전히 내 것으로 내 맘 내키고 내 몸 상태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보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몇 시까지는 일어나야 늦지 않고, 점심은 입맛은 없지만 먹어야 오후 수업을 할 수 있고, 저녁에는 몇 시에는 자야만 다음 날 일에 지장이 없고.... 이렇게 나를 옥죄며 일에 맞추어서 나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사회생활의 시간표는 모두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구속이며 심적인 스트레스와 함께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억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족쇄처럼 여겨졌다.

더욱이 나같이 성장기부터 이런 속박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숨 막히는 일이었다. 학령기에는 의무교육을 받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시간표대로 살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내가 다른 직업이 아닌 교수를 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그래도 비교적 시간이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다른 직업에 비하면 어느 면에서 보나 시간적으로 자유롭고 여유로운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따라 짜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갑갑하고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으로 생각되었다.

퇴직해서 좋은 점 중 첫째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씻고 싶을 때 씻어도 되는 나만의 리듬과 시간표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방종이 아니라 내 몸에 맞고 나의 선택이 존중되는 내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시발점이 된다.

어떤 사람은 퇴직 후 아침에 나갈 곳이 없어 문제가 된다고 하지만 나가고 싶으면 혼자라도 나가고, 나갈 곳은 만들면 되는 것이다. 외부적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형편대로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며 여유롭고 편안하게 움직이고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든다.

어떤 면에서는 게을러졌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이 들어 좀 느리게 게으름도 피우며 여유롭게 사는 것이 가장 큰 특권 아닌가? 이제야 비로소 온전하게 내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다른 것에 의해 등 떠밀려 사는 것이 아니라 내 발로 나답게 사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삶이 낭비적이며 소모적인 것만은 아니다. 마음과 정신의 여유와 평화를 누리며 나와 주변을 둘러보고 챙기면서 더 풍요롭게 사는 방법이라 여겨진다.

이렇게 먼저 내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고 이제부터는 나답게 살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면 그다음 할 일은 내가 만들고 이끌어 나가면 된다. 그래서 이제껏 여러 가지 이유에서 못해본 것, 할 수 없었던 것 그리고 하지 않았던 것과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챙겨나가게 된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를 가장 먼저 시도해 보고 있다. 체면 때문에, 아니면 다른 이유로 못해 보았지만 원하는 것을 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앉아서 글을 읽고 쓰는 일을 많이 했으니 이제는 움직이는 것에 치중하고 싶다. 그중 춤추는 것을 좋아하니 이것부터 하기로 했다. 지금은 사회적 이유로 춤추러 다니지 못하니 산책이라도 원하는 시간에 나가고 있다.

이렇게 시간을 내가 계획하고 누리며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나이 들어 주어진 가장 큰 특권이다. 어떤 사람은 사회로부터 소외된다고 하지만 사회로부터 소외된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생존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며 이제는 스스로 원하는 관계를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사회적 책임은 어느 정도 이루었으니 더 이상 사회라는 울타리에 강제로 갇혀서 살아가야 할 이유도 없다.

나는 아직도 사회와 인간관계라는 공해로부터 탈피하는 해독 기간으로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관계에서 벗어난 것이 너무도 홀가분하고 마음 편하게 느껴진다. 생계를 위해서 참아야만 했고 억누르기만 했던 불편들에서 벗어나서 이제야 해방된 기분이다. 이렇게 많은 특권과 해방감을 누리는 것이 나이 든 사람에게 주어진 최고의 특권이다.

이런 해방감과 특권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고 홀연히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그래서 생존이라는 시끄러운 저잣거리를 벗어나 진정한 사람의 길을 찾아가는 또 다른 초월적 삶과 존재적 삶이 있다는 것을 내 삶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속에서 흔들리며 사는 것이 아닌 세상을 초월해서 그러면서도 세상 모두를 품어 안아 주는 진정한 삶의 길을 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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