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어 할

by 최선화

나이 들어 할 일

나이가 들고 세상에서의 임무와 책임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면 안도감과 함께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반추하게 된다. 이런저런 공과 후회들이 밀려오지만 그 모두를 축복과 함께 너털웃음과 잔잔한 미소로 흘려보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렇게 세상적인 일들을 다 흘려보내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는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세상에서의 의무를 어느 정도 이룬 다음에도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럴 때 사람들은 이제는 남은 생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여행도 가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못 해본 것도 하고. 참 좋은 얘기다, 그동안 미루어 온 일들을 하나하나 챙기며 살고 싶어 한다. 그렇게 미뤄 둔 숙제를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그렇게 미루어 둔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여행도, 노는 것도 아니다. 그런 세속적인 것들은 이미 원하는 만큼 해온 사람이다. 그래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실한 숙제를 해야 할 것 같다.

세상에서의 책임과 임무를 마치고 난 지금 남은 것은 나를 만든 그리고 내가 조만간 돌아가야 하는 근원적인 본질에 관한 관심으로 회귀하게 된다. 애초에 나를 만들고 태어나게 한 생명의 근원에 대한 의문과 책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세상일에 바빠 놓여버렸지만 계속 내 가슴 한구석에 숙제로 남아있던 일을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직면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살면서 이런저런 일들에 직면하면서 가끔 내가 진정으로 누구인가? 하는 의구심들이 일었다. 나는 왜 이 땅에 왔고 그래서 무엇을 이룰 것인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 말고도 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사명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느낌도 들었다. 이제는 내가 머지않아 마침내 돌아갈 곳이기에 이러한 생각들은 더 간절해진다.

생명의 근원과 그 본질에 대한 추구는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생명의 본질은 사는 것이지만 내가 살아온 길이 진정한 삶의 길이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어디선가 본 글이 생각난다. ‘사랑하는 순간은 삶의 순간이지만 미워하고 질투하는 순간은 죽음의 순간이기에, 이런 각각의 순간들이 모여서 진정한 삶을 누렸는지 아니면 죽음의 길을 걸어왔는지가 평이하게 드러날 것이다’라고. 그래, 살아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삶도 있기에 정말 사는 것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나이 들어 하루하루가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안타깝고 아쉬운 순간들 앞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더 사랑하며 베풀고 나누며 사는 듯이 살아야 한다. 사는 것이 진정으로 어떤 것인지를 알며 진정한 삶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모든 경전과 성인들의 말씀에는 서로 사랑하라고 한다. 흔해 빠진 것이 사랑한다는 말이지만 이 식상하기 조차 한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일상의 모든 순간에 녹여내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다. 그러기에 해내야 하고 진정한 의미와 뜻을 드러냄으로써 진정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세상에 전해줄 수 있는 귀한 유산이며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 보살펴주고 도와준 생명과 근원에 대한 보답이다.

사랑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녀 간의 사랑이나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참 좋은 사랑의 예지만 더 적절한 사랑의 예는 해나 태양이라는 느낌이 든다. 인간의 얄팍한 기분이나 감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누구도 판단하지 않고 모두에게 골고루 아낌없이,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푼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생명을 키우고 살린다는 의미에서 더 그렇다. 사랑은 서로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하며 모두에게 대가 없이 햇살처럼 베푸는 것이다.

일상생활적 경험에서는 사랑이라는 말보다는 연민이나 책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감정을 좀 덜어내고 덜 오염된 말로 인간 본연의 서로에 대한 연민과 책임 내지는 유대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더 담백하고 받아들이기 쉽다. 그리고 일상의 생활 속에서 분화된 표현도 더 다양하고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서로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나 책임감은 더 본질적인 것에 대한 헌신과 사랑 없이는 고갈되기 쉽다. 그러기에 나를 만든 근원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먼저 수용함으로써 다른 곁가지들이 살아나고 움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가장 깊고 큰 사랑과 책임은 나를 창조한 근원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돌아가게 된다. 진정한 나의 본질을 알고 그것에 충실하게 되면 그다음은 햇살과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스스로 자리 잡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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