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거실에서 큰 소리가 잦아졌다. 목소리를 높여 내 말이 맞다고 소리치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로 상처를 주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 확대로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를 뜻하는 '코비드(Covid)'와 이혼을 뜻하는 '디보스(Divorce)'의 합성어인 '코비디보스(Covidivorce)'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립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머물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상하고 계속 부딪치다 보면 불안과 분노로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퇴직 후 부모님의 다툼도 잦아졌다. 누구나가 느낄만한 상실감과 무력감으로 작은 공간 안에서 사소한 일에 싸움이 시작되며 자꾸 부딪치는 것이다. 또한 급작스러운 재난 상황에 두려움과 불안은 더욱더 커지며 감염에 대한 근심으로 예민해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눈에 거슬리면 그 사람이 뭘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잘해주어도 무슨 꿍꿍이가 있나 생각하거나, 반대로 무관심해도 괜히 젠체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이미 내 안의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편견을 깨뜨리려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확증 편향'이다.
· 확증편향: 자신의 신념과 결정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지나치게 주목하는 것. 어떤 주관적 관념을 갖게 되면 이 관점은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 있게 된다. 판단이 입증될 때마다 편견은 강화된다.
코로나 블루를 넘어선 코로나 앵그리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매일 많은 시간을 고립된 공간에서 같이 보내 서로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야기되는 무기력증과 우울감을 뜻하는 '코로나 우울(블루)'을 넘어서 극심한 분노나 과잉행동이 '코로나 앵그리'로 표출되는 것이다. 누구나가 느낄만한 우울감에 무력감이 쌓여 나 또한 분노가 격해졌다. 서로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모진 말을 계속 해 결국 듣고 있던 나도 울화를 쏟아냈다. 감정이 격분해 서로에게 말로 상처만 입히고 밤잠을 설쳤다.
두 분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과거의 잘못을 끄집어내며 그때의 서운한 감정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더 울분을 토하는 것이다. '나이가 많으셔서 바뀌지도 않으실 테고.. 에휴, 방법이 없네, 그냥 귀 닫고 견디는 수밖에.'라고 한숨 쉬며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출근길에 나섰다.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회사에 도착해 오전 시간을 보냈고, 이윽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직장동료와 연애 시 애착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다 성인애착 테스트를 해보니 동료는 '안정형', 나는 '회피형'으로 나왔다.
내가 보는 나, 타인이 보는 나의 성향이 비슷했으며 회피형이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점도 배우게 되었다. 반성하며 성장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려는 데, 마침 부모님이 떠올랐다. 엄마는 '불안형'에 가까워 불안을 자주 표출하셨으며 아빠는 '회피형'성향으로 상황을 외면해 골이 깊어진 것이다. 불안형이 회피형을 만날 경우, 회피형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불안형은 더더욱 불안이 고조되며 에너지 소모가 심해진다. 이 두 만남은 최악의 조합이다.
둔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이었다.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다. '부모님은 나이가 많으셔서 어차피 안 바뀌시겠지? 또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 생각은 정말 굳어졌을 거야. 가망이 없어. 그냥 코로나가 좀 완화되면 괜찮겠지.'라 생각하며 기대 없이 집으로 들어섰다. 저녁에 그래도 한번 성인애착을 알려드리자는 생각으로 두 분을 모시고 '불안형'과 '회피형'에 대해 말씀드렸다. 두 분이 안 맞는 이유는 불안도가 심한 엄마가 의지할 곳을 찾는데 아빠는 회피형이라 자꾸 감정표출을 피하기만 한다는 내용이었다.
찾은 내용을 토대로 연애 감정이란 우리가 어릴 때 경험하는 애착 형성에서부터 시작되며 양육자에게 느꼈던 친밀감과 유대감이 성인에게까지 손 뻗치게 되는 것이다. 회피형과 불안형의 어릴 적 양육과정에 대한 되새김, 사랑에 대한 감정, 그리고 '안정형'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두 분이 생각보다 차분히 잘 들어주셨다. 함께 어릴 적으로 돌아가 지금은 안 계신 양육자의 양육방식에 대한 생각이나 전쟁 이후의 힘든 상황 등을 나누셨다.
네 가지 성인애착 유형
개그맨 부부의 이혼율 0%인 이유
내 불안과는 달리 내 말에 경청했고, 또 상대방의 애착 유형에 대해 듣고 이해하려 하셨다. 두 분 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쌓아온 상처가 있기에 심리상담을 권유했다. 예전과는 달리 흔쾌히 상담을 받고자 하셨다. 우리는 생각보다 사소한 데에서 싸움을 시작하고 생각지도 않게 사소한 걸로 화해를 한다. 개그맨 부부는 이혼율이 0%라고 한다. 그 비결은 바로 '웃음'이다. 큰 싸움으로 번지려 해도 서로를 피식 웃게 하는 개그로 기분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이혼을 앞둔 부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서로에 대한 악한 감정이 극에 달해 외박도 하고 집안에서 대화도 하지 않았다. 이혼 준비 중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주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귤 한 봉지를 마지못해 사 왔다. 식탁에 올려놓고 욕실로 바로 들어가 씻고 나오는데 아내가 귤을 까먹으며 "귤이 참 맛있네."라 혼잣말을 했다. 남편은 결혼 후 8년 동안 아내가 좋아하는 귤조차 사주지 않았던 자신을 반성하고 화해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사랑을 하기 시작하면 어린아이가 된다. 어릴 적 상처 받았던 결핍을 가진 어린아이가 나타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애정을 갈구하기도 한다. 고집이 세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노부부는 그렇게 딸이 읽어주는 애착관계를 듣고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하셨다. 우리 가족에겐 심리학 책이 귤이었던 셈이다. 위기를 겪고 있는 부부나 이혼 전의 부부들도 상대방이 좋아하는 과일을 사 오든 좋은 책을 추천하든 사소한 시도를 한번 해보기 바란다. 상처 받는 말을 가장 심하게 내뱉을 수 있는 곳도 가정이고, 몇 년간 응어리졌던 마음이 쉽사리 풀리는 것도 가족관계이기 때문이다.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전국적으로 운영 중이며 매달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 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예방하고 가족 관계 향상을 주목적으로 한다. 일과 가정 양립과 가족생활의 남성참여 활성화를 위해 자녀와의 놀이 방법 등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남성 대상 육아 교육도 운영한다. 가족도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부모님이 나이가 드셔서 바뀌지 않을 거란 내 생각이 틀린 게 이렇게 기쁘긴 처음이다. 가족 간의 문제가 있다면 사설 심리상담센터도 주변에 많이 있기에 한번 문을 두드려보기 바란다. 내 안의 상처 받은 어린아이는 나 또는 내 가족만이 치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