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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Aug 24. 2021

설렘의 시작, 첫 발걸음

심장이 두근거리는 출발의 순간


산타바바라 좋아


단순히 이 한 문장으로 긴 여행은 시작되었다. 단순히 좋다는 말만 믿고 떠날 준비를 한 단순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 생각했던 토플 성적을 얻고 나니 허무해져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막상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니 어디를 가야 할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친구의 좋아라는 말 한마디에 목적지는 쉽게 정해졌다. 산타바바라. 이름도 참 아름답다. 저 멀리 태평양 너머 있는 미지의 세계로 가는 데 이유는 그저 친한 친구의 추천이면 충분했다.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수십 가지였지만 가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좋은 곳을 찾아 떠나고 싶다는 나의 욕망. 때론 단순하게 사는 것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이고 내구두 떨어뜨렸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하고 땅을 밟으려 할 때 신고 있던 구두를 떨어뜨려 '아이고 내구두'라 외쳐 1492년도로 암기하라는 학창 시절 선생님의 재치가 다시 떠올랐다. '몇백 년 후인 지금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미국이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매일 밤을 지새웠다. 고국을 떠난다는 일은 마냥 쉽지 않았다. 복잡했던 준비 과정만큼이나 불안한 내 마음은 출국 시기가 다가올수록 요동쳤다. 한국을 떠나는 그날까지의 모든 일이 마치 우주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또 느리게 다가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처언.... 천.. 히...

떨어뜨린 구두를 보며"아이고 내구두"라고 외친 아메리카를 처음으로 발견한 콜럼버스. 구두는 주우셨나요? @history.com


콜럼버스가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설 때 이러한 기분이었을까? 한국을 떠나는 그날, 나는 가시 솟은 고슴도치처럼 초긴장상태였다. 새로운 땅 막상 혼자 가려 두려움이 밀려옴과 동시에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이다. '표는 잘 받을 수 있을까? 검사는 어떻게 통과하지? 이민국에 잡히면 어쩌지? 공항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안 나와 있으면 어쩌지?' 온갖 사소한 걱정이 고슴도치 가시처럼 바짝 솟구쳐 누구라도 찌를 기세였다. 불안은 쉬이 잠재워지지 않았다.


두 손에 보딩패스를 꼭 쥐고 무사통과했지만 여전히 떨렸다. 혹시라도 나만 버리고 가진 않을까 게이트 앞에서 몇 번이나 보딩패스를 확인하며 게이트가 열리길 기다렸다. 그때 홀로 남겨진 한 청년,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서던 청년이 앉아있다. '이제 난 성인이야. 알아서 해야 하는 나이잖아.' 한 치 앞의 일도 못 봐 두려움으로 가득한 내가 이제 보인다. 매 순간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 내가.



택시를 탔어야 했나?


두 번째 올라탄 비행기엔 낯선 것 투성이었다. 하나라도 놓칠까 이것저것 살펴보고 어린아이처럼 눌러보았다. 피곤이 몰려와 눈이 서서히 감겨오는 그 찰나 내 눈을 깜짝 뜨게 한 영어단어가 보였다. 'taxi'였다. '왜 택시가 쓰여있지? 항공사랑 택시업체랑 연계가 된 건가? 아님 택시 타고 온 사람만 여기 앉을 수 있나?' 불안감은 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전자사전을 열어 찾아보니 'taxi-(이륙 직전 착륙 직후에) 천천히 달리다(이동하다)'라 적혀있었다. '와, 영어는 한 단어가 여러 가지 뜻이 있구나. 택시 안 탔다고 비행기에서 쫓겨날 뻔했네. 이 단어는 평생 잊지 않겠다.'



너뤼라가 아니라 서울에서 왔어요


일본항공을 타고 서울에서 출발해 나리타를 경유한 뒤 LAX에서 환승 후 산타바바라로 도착하는 비행 편이었다. 미국은 불법체류자가 많아 이민국에서 인터뷰를 잘못하면 입국이 힘들다는 건 익히 들어서 가시는 계속 우뚝 솟아있었다. '이렇게 준비했는데 돌아갈 순 없어. 제발 무사통과하길.'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심사관이 "너뤼라? 너뤼라에서 왔어요?"라 물었다. 당황한 나는 "아니오. 서울에서 왔어요. 그런데 도쿄 들렀다 온 거예요."라고 크게 답했다. 심사관은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처했다. "거기가 너뤼라예요." 그리고 도장을 쾅 찍었다. 어리바리한 20대 여학생을 너그럽게 이해해준 그는 나의 첫 번째 은인이었다. 알고 보니 교토(Kyoto)를 영어로 키오토라 발음하고 나리타(Narita)를 너뤼라로 발음하는 그들이었다.


또 한 번의 기적은 LAX 공항에서 일어났다. 환승을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환승이 익숙지 않아 그저 긴 줄 맨 뒤에 서 있었다. 승객의 표를 일일이 확인해보던 어느 직원이  보딩패스를 보고 탑승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며 재량권으로 새치기를 허용해 앞쪽에 서게 해 주었다. 또 다른 은인이었다. 어딘가를 여행할 때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이후 어딜 여행 가던 목적지에 도착하면 나는 수호천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 내가 여기 오기까지 수호천사가 은인이 되어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무사히 다음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첫 인종차별인가?

 

산타바바라를 만나기 전 수호천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산타바바라는 LAX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반 남짓 걸리기에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게 된다. 영화에서만 보던 아슬아슬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 좁디좁은 비행기 몸을 구겨 탑승해야 한다. 마지막 비행기를 제대로 탔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 자리를 찾으니 이미 콧수염을 기른 카우보이처럼 보이는 미국 아저씨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나에게 앞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거기에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동양인 인종차별인가?


모로 가든 산타바바라에 가면 되니깐 일단 앉자. 의자와 한 몸이 된 나는 이내 장시간의 비행에 지쳐 곯아 떨어졌다. 이륙한 비행기의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릴만큼 피곤했다. 잠시 후 눈부신 햇살이 얼굴에 내리쬐어 잠에서 깨게 되었다. 실눈을 살짝 떠보니 주홍빛 기와지붕 건물 사이 야자수 나무가 가득한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마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 바다에 빛이 반사된 햇살은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길 같았다. 하늘 위 수호천사와 함께 이 황홀한 광경을 비행하듯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타바바라에 도착했다. 모든 순간이 기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타바바라에 도착하다


✈️ 여행 에세이 <나의 첫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 나의 첫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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