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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Nov 10. 2022

15살 컨버스 운동화가 보내는 편지

너를 떠나며

안녕?


난 너의 열다섯 살 컨버스 운동화야. 내 얘기 한 번 들어볼래??


난 너와 지난 2007년에 미국의 한 아웃렛에서 만났지. 공장이라는 곳에서 만들어져서 줄곧 어둑어둑한 곳에만 있었거든. 창고라고 부르는 어느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계속 옮겨 다녔어. 영문도 모른 채 말이야. 그래서 난 어둠이 익숙해. 그런데 가끔 누군가가 끼익 하고 문을 열면 눈부신 무언가가 창고 안으로 들어오는 거야. 옆에 있는 장화 친구한테 물어보니깐 그게 빛이라고 하더라고. 그런 빛이 한줄기 들어오면 창고는 살짝이라도 따뜻해져. 적막한 어둠 속에 따뜻함이 전해진다고나 할까? 나도 언젠가 이 어둠을 떠나서 빛을 만날 기회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또 누군가가 끼익 문을 여는 거야. 잠시나마 빛을 만나겠다는 생각이 신났었지. 그런데 갑자기 나를 번쩍 들어 올리는 거야. 드디어 따뜻한 곳으로 향하는 건가? 그러나 신남도 잠시였고, 한참 창고에 쌓인 나와 친구들의 뚜껑을 열어서 어느 한쪽에 전시해놓더라고. 그곳은 창고 털기(Clearance) 세일이라고 적혀 있었어. 그게 무슨 뜻인진 잘 몰랐지만 어쨌든 어둡고 습기 많은 창고를 탈출한 것만으로도 좋았거든. 그렇게 나는 빛이라는 걸 처음 보게 되었어.  


어느 주말, 난 너를 처음 만났지. 그때 네가 그날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샵에 들어오는 거야. 무언가를 꼭 사고야 말겠다는 눈초리로 여기저기 정신없이 보던 너는 처음엔 네가 나를 보며 무심코 지나쳤어서 너무 슬펐거든. 그런데 네가 친구와 다시 돌아오더라고. 한참을 내 앞에서 얘기하는 걸 보니 난 내가 오늘도 남겨질 것 같다는 생각에 걱정을 많이 했거든.


왜냐면 너는 무난하게 오래 신을 흰색이나 검은색을 찾고 있었고, 난 누가 봐도 눈에 띄는 민트색이었으니깐. 한숨을 쉬며 '이곳을 벗어날 수 없겠구나. 나는 영영 햇빛을 못 보겠구나. 오늘도 안 되겠구나.' 라 생각하며 눈감고 있는데 네가 상자에 담긴 나를 번쩍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거야. 네 집으로 향하던 그때가 얼마나 기쁘던지 한참을 웃음이 나더라고. 무엇보다 내가 만난 첫 자연광이라는 햇빛이었으니깐.


그 이후로 난 너와 함께였어. 아스팔트 길이나 흙길이나 비가 와서 질펀한 길도 언제나 너와 함께였지. 그렇게 햇빛을 맞으며 너와 함께 다니는 여행이 참 좋더라고. 누군가에게 예쁘다고 칭찬도 받고 말이야. 또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말이야. 그곳이 학교든 새로운 나라든 함께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곳을 가보는 게 드물어졌어. 네가 크리스마스 때 새로운 운동화를 선물 받고 나서 말이야. 그때부터 난 또 창고에서 빛을 기다렸어.


난 너와 수많은 곳을 여행했어. 학교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의 공항도 함께 했지. 호주의 한 바다 앞에서 이게 바다구나를 느끼기도 하고, 천혜의 섬인 제주도 일대를 광활한 대자연을 누비기도 했어. 네가 나를 잊었다 생각할 때쯤이면, 나를 항상 꺼내서 새로운 빛을 바라보게 해 줬어. 몇 번이나 나를 씻겨주기도 하고 말려주기도 하고 또 다른 끈으로 나를 예쁘게도 꾸며줬지. 여기저기 뜯어진 나를 보며 버릴뻔한 위기로부터 구해주기도 했지. 이제 그렇게 여러 번의 계절이 지나가고 15년이란 시간이 지났어.


15년 동안 아울러서 너무나도 즐거웠어. 근데 나도 이제 여기저기가 뜯기고 해져서 예전만큼 그 구실을 못하는 거 같아.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인 것 같아. 너와 같이 한 여행은 너무나도 즐거웠어. 평생 잊지 않을 게. 넌 나에게 처음 햇빛을 보여준 사람이었으니깐.  

이제 가야 할 때인 것 같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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