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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Mar 07. 2023

빈 미술사 박물관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을 보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막판 열기가 뜨거운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을 다녀왔다. 마지막 예매 일을 놓치지 않고 예매를 해놔서 안심하고 갔다. 가보니깐 정말 줄이 길었다. 10시 표여서 9시 30분쯤 갔는데도 줄이 엄청 길었다. 천막 안쪽부터 끝까지 줄이 엄청 길었고 인터넷 예매를 해도 창구에서 표를 종이표로 바꿔야 한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은 어린이 박물관 옆에 있다. 많은 분들이 인증숏을 찍고 있었다. 10시 오픈이었는데 융통성 있게 9시 50분부터 입장이 가능했다. 들어가면 오디오 가이드를 왼쪽에서 빌릴 수 있고, 짐도 맡길 수 있다.


   


오스트리아가 전 세계를 지배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스마트 활동지'도 QR코드를 따라가면 볼 수 있습니다. 합스부르크가의 비상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다. 합스부르크의 시작은 바로 막시밀리안 1세이다. 바로 합스부르크를 일으킨 사람이다.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신성로마제국 2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대공이었다. 적극적으로 정략결혼을 추진하여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지와 세력을 넓힌 것으로 유명하다. 어학에 재능이 있어 11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도 했다.


총 3번의 결혼을 했으며 첫 번째 부인인 마리 드 부르고뉴는 황금의 신부로 불렸다. 아름답고 부유하며 잘 배운 여성이었다 전해지는 마리와 막시밀리안은 매우 사랑했고, 두 명의 아이를 낳는다. 마리가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중 사냥을 갔다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사망하고 말았다. 막시밀리안에게 청혼하며 편지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보낸 동화 라푼젤의 모델이기도 하다.

마리 드 부르고뉴 1457년 ~ 1482년 (25세)
켄타우로스 에우리 티온을 죽이는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Hercules, Ἡρακλῆς)



그리스 신화의 영웅의 신 헤라클레스다. 위대한 전사의 상징이기 때문에 보통 사자 가죽을 두르고 올리브 나무 몽둥이를 든 근육남으로 묘사되고 있다. 올림포스 신들의 대전쟁인 기간토마키아가 벌어지는데 위대한 인간 영웅의 도움을 받으면 기간테스를 무찌를 수 있다는 운명의 여신들의 예언에 제우스는 최고의 영웅을 만들겠다는 의도적인 목적으로 알크메네와 관계하여 낳은 자식이 바로 헤라클레스다. 불사로 만들기 위해 헤라의 젖을 몰래 먹여가며 길렀다. 에우뤼토스에게 궁술을 배우고 헤르메스에게 칼을 아폴론에게 활과 화살을 헤파이스토스로부터 황금 가슴받이를 아테네로부터 옷을 받고 자력으로 몽둥이를 베어서 엄청난 영웅이 되었다.



막시밀리안 1세의 갑옷
루돌프 2세의 리본 장식 갑옷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독수리 장식 갑옷


화려한 명품 갑옷들은 시대가 변해도 변함이 없었다. 금방 장식이 들어간 갑옷은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이 아버지인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1세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다. 갑옷에 오스트리아의 상징 독수리를 새겨 용맹함을 자랑했고 손가락 부분의 절개도 섬세해 몸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움직임도 용이하게 만들었다.



요새 다리와 물레방아가 있는 풍경 (보석 모자이크)


요새 다리와 물레방아가 있는 풍경


조반니 카스트루치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멀리 산맥이 있고 가운데에는 성과 다리가 보인다. 보석류 석판을 형태에 맞게 깎아 조립해 '보석 모자이크'라고 불린다. 루돌프 2세 황제의 황실 석공이었던 조반니 카스트루치는 피렌체 출신 장인으로 프라다로 이주해 '보석 모자이크'를 전문으로 하는 공방을 설립했다. 마노와 보헤미안 지역에서만 나는 벽옥을 사용해 은은한 색채를 낸 제 작품이다.



누금 장식 바구니



작은 크기의 바구니는 꽃과 잎 무늬의 가는 금줄과 작은 금 알갱이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금 세공으로 섬세하게 작업한 것으로 금세공 작업은 17세기 유럽에서 수요가 많았다. 루돌프 2세 황제는 작품을 가장 특별한 예술품만을 모은 소장품 집에 포함시켰다. 인도 서부의 고아를 중심으로 생산되어 리스본을 통해 유럽에 들어온 것으로 루돌프 2세의 소장품 집에도 인도의 작품으로 기록하고 있는 작품이다.

누워있는 비너스와 큐피드


다루기 까다로운 옥수 한 덩이로 인체 표현과 움직임을 정교하게 살린 조각상이다. 자연적 색채를 그대로 살린 조각가의 방식이 돋보이는 조반니 암브로조 미세로니의 작품이다. 당시 재료의 질감을 살려 실력이 뛰어난 석공으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그릇 바깥 면을 두르는 소용돌이 띠무늬와 정교하고 얇게 깎은 가장자리는 오타비오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HC라는 머리글자를 쓴 제작자가 한 것으로 받침대에 서명이 있으며 그릇과 받침대를 연결하는 도금 은제 장식에 투각 장식이 된 긴 암술대 모양의 장식을 더하는 것이다. 밀라노 출신 석공 오타비오 미세로니는 루돌프 황제의 요청을 받아 프라하에 공방을 차렸고, 유럽 석조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데 일조한다.




자세히 보면 유디트가 홀로 페르네스의 머리를 자른 뒤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그의 머리를 들고 있는 장면이 보인다


유디티와 홀로 페르네스 이야기가 있는 접시다. 접시에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화살표가 표시된 곧바로 유디트가 보인다. 유디트는 므라리의 딸이며 남편 므나쎄는 보리를 수확할 때 죽었다. 3년 4개월 동안 옥상에 천막을 치고 살며 과부 옷을 입고 지냈으며 이스라엘의 축제일을 제외하고 단식을 했다. 용모가 아름다웠고 남편은 많은 재산을 남겼다. 홀로 페르네스는 아시리아의 대장군으로 유다를 정복 하려고 베툴리아를 포위했다.


34일 동안 포위당한 이스라엘인들은 기근과 갈증으로 항복하려 하지만, 유디트가 원로들을 꾸짖고 시녀와 적진으로 가서 홀로 페르네스의 환심을 사는 작전을 펼친다. 자신에게 반한 홀로 페르네스가 만취한 틈을 타 그의 머리를 자르고 성벽에 걸었다. 아시리아 군대는 달아나고 유디트는 베툴리아의 존경을 받으며 105살까지 살게 되었다.


홀로 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1599
<유디트> 구스타프 클림트


각자의 스타일로 전시를 맘껏 감상하고 있다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
그림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카를 5세가 있는 메달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스페인이 사랑하는 화가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에 나오는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다. 어린 마르가리타 공주가 앞을 바라보고 있다. 두 시녀는 검은 눈, 검은 머리를 가진 카스티야 지방의 귀족 딸이다. 오른쪽에는 왜소증 시녀 마리아-바르볼라가 있으며 다른 왜소증 시종 니콜라시토 페르투사토가 졸고 있는 개 위로 발을 올리고 있다. 수녀 복장의 시종장과 궁중 경호원이 속삭이고 있으며 그림 왼쪽에는 화가 벨라스케스가 정면을 응시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거울에는 마르가리타 공주의 부모인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4세 부부가 보인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로 손꼽혀왔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 루카 지오다노는 이 작품을 '회화의 신학'이라고 표현했고, 토마스 로런스 경은 '예술의 철학'이라 일컬었다.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 사이에 난 유일한 자식이었던 다섯 살짜리 공주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1세와 결혼했다. 합스부르크가의 근친혼에 의한 유전병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시녀들〉(Las Meninas, The Maids of Honour), 디에고 벨라스케스, 1656,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의 브뤼셀 화랑, 다비드 데니르스 2세, 빈 미술사 박물관


모자를 쓴 레오폴드 빌헬름 대공(화살표)과 그의 궁정 화가 다비드 테니르스 2세를 중심으로 당시 구입한 51점의 이탈리아 회화를 둘러보는 장면을 그렸다. 제일 왼쪽에서 두 번째 그림이 베로네세의 <동방박사의 경배>(노란 동그라미)다.


동방박사의 경배는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이 갓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이라는 사건으로 예수의 신성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구원이 유다인을 넘어 이교도까지 확장됨을 나타낸다. 이날은 1월 6일로 추정하고 주현절 Epiphany로 칭해 큰 축제로 지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황금, 유향, 몰약을 들고 성모자 앞으로 나가고 있다. 황금은 왕권을, 유향은 신성을, 시체의 부패를 막아주는 몰약은 죽음을 통한 희생을 의미한다. 성 베르나르는 금은 마리아와 요셉의 가난을 구제한 것으로, 유향은 마구간의 공기에 향을 내기 위해, 몰약은 아기의 건강을 위한 약제라는 실질적인 해석을 했다.

<경배> 루벤스, 루브르 박물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경배> 산드로 보디첼리,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1475


보디첼리는 메디치가의 환심을 사려는 귀아스파레 델 라마의 주문으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제단을 위해 제작한 <경배>에는 메디치가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예수의 발에 입을 맞추는 연장자의 얼굴에 코시모 메디치를, 붉은 망토를 입고 있는 피에로, 그와 얼굴을 마주 보는 형제 조반니를 그리고 검은 바탕에 붉은 줄무늬 망토를 입고 있는 위대한 로렌조를 그려 넣었다.




기름 부음을 받는 솔로몬, 코르넬리스 데 포스, 1630년경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아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는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다. 기름 부음은 왕위 계 의식을 의미한다. 솔로몬은 화려한 대야 위로 몸을 숙이고 그 뒤로 시종 두 명이 왕실의 상징 홀과 왕관을 놓은 베개를 들고 서 있다. 나선형 기둥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솔로몬 기둥을 연상시킨다.


<바람난 신부를 둔 신랑> 얀 스테인, 1670년 경


한 여관에서 열린 왁자지껄한 결혼식 피로연 장면이다. 나이 많은 신랑은 지푸라기 몇 가닥만 꽂은 모자를 쓰고 있다. 볼록한 신부의 배에 손을 올린 아이가 짓궂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아하니 신랑이 바람난 신부에게 속았음을 알 수 있다. 플랑드르에서는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풍속화가 그려졌다. 부부의 정절을 지키고 간통을 삼가라는 교훈을 전해준다. 흰 동그라미 안의 북모양의 네덜란드 전통악기인 롬멜폿을 연주하는 남자가 얀 스테인 작가다.




<성 세바스티안>알브레히트 폰 호른


고대 로마 황제의 근위 대장 성 세바스티안은 기독교 신자를 몰래 도왔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이를 알게 되어 사형선고를 내리지만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는다. 두 번째 선고에서 그는 순교한다. 첫 번째 사형 선고로 나무에 묶여 화살을 맞는 장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화살이 꽂혔지만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어 전염병을 막는 수호성인의 상징이 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 초상화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1766년 4월 2일 호프부르크 왕궁에서 열린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과 작센 공작 알베르트의 약혼을 축하하는 공식 연회를 그렸다. 테이블 중앙에 요제프 2세 황제와 황후가 자리하고 있고 오른쪽에는 신랑신부가 있다. 테르지아의 두 남자 대공과 후일 마리 앙투아네트가 되는 마리아 안토니아를 포함해 다섯 여자 대공이 왕위 계승 순서대로 앉아있다. 12명의 황실 가족들이 앉아있는데 사들이 보는 가운데 식사를 하는데 실제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도 시종이 아니라 선별된 귀족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성 안드레아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한 명인 성 안드레아. 그는 X자 모양의 십자가에 처형되어 X자 십자가를 성안드레아의 십자가라고도 부른다. 18세기 초,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로마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의 중앙통로 벽감에 안치하기 위해 대항 사도 조각상 12점을 주문했다. 이 작품은 조각 작업 전 제작한 축소판 모형 중 하나다.


색실을 짜넣어 그림으로 표현하는 직물 공예, 테피스트리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이자 헝가리 왕국의 왕비 시씨(Sisi)와 그의 남편 프란츠 요제프 1세





합스부르크 왕가의 600년 역사 속에 조선이 등장한다.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인 1892년 오스트리아와 조선은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구의 여러 나라와 수교를 맺었다. 오스트리아는 오랜 경쟁관계에 있던 러시아를 견제하고 자국 상인들이 조선의 개항장에서 법적으로 보호받으며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오스트리아와 조선은 수교를 맺었다. 고종이 프란치 요제프 1세에게 보낸 조선의 갑옷과 투구는 13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1시간 즈음 전시를 보고 나오니 남산이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이 좋았다. 합스부르크 600년 사를 한 번이라도 보고자 하는 사람들로 대기줄은 더욱더 길어졌다.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중부 유럽의 패권을 휘어잡은 가문 합스부르크. 신성 로마제곡의 제위를 세습하며 근세 유럽에 얼마 안 되는 황제 가문으로 최고의 권위와 명예를 누린 가문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동맹국으로 참전했다가 패전함으로써 제국이 해체되고 합스부르크가 지배했던 모든 나라들이 군주제와 귀족제를 폐지함으로써 모든 제위와 왕위를 상실했다.

영원한 제국으로 600년 이상 유럽을 지배해 온 합스부르크 제국의 멸망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자신들이 유럽 최고의 집안이라는 자부심으로 뭉친 합스부르크 왕가는 혈통을 사수하기 위한 방법은 근친혼이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총 96점으로 600년간 유럽을 호령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걸작들을 끌어모았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디에고 벨라스케스, 틴토레토, 안토니 반 다이크 등 서양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이다. 그림에 어울리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한 전시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참고 자료>

- 6세기를 이은 화려한 가문의 영광,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 시녀들

- 시녀들: 라스 메니나스

- 송주영의 맛있게 그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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