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이 체질
맞춰놓은 알람 전에 기상합니다. 저절로 눈이 떠지거든요.
대충 씻고 대충 먹고 나갑니다. 회사 가야 하거든요.
떠나려는 지하철에 세이프하고 이어폰을 꽂습니다. 나라가 허용한 유일한 마약이거든요.
환승해야 하는 곳에서 기가 막히게 눈이 떠집니다. 출근이 체질이거든요.
만원 버스에 끼여 탑니다. 낑겨타는게 낫지 걸어갈 순 없거든요.
회사에 도착해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합니다. 사회생활 중이거든요.
탕비실에 가서 커피를 내립니다. 이거라도 안 마시면 뒈져 죽어버릴 거 같거든요.
컴퓨터를 켜고 업무를 시작합니다. 그래야 할 거 같거든요.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러 나갑니다. 드디어 직장 동료와 말을 할 기회가 왔거든요.
졸린 눈을 부릅뜨고 일을 다시 시작합니다. 해야 할게 산더미거든요.
퇴근하고 집에 가서 쓰러져 잡니다. 밥보다 잠이거든요.
직장인으로 태어난 건 아니지만 직장인의 틀에 맞춰진 지 오래다. 직장인의 장점이라면 경제상황과 상관없이 일정한 고정월급이 들어온다는 점이다. 세금 신고 등 세금 관리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것, 정해진 시간에만 일하고 휴일에는 일 안 해도 된다는 점, 회사에서 일이 줄어든 경우에 좀 쉬어도 월급은 똑같다는 점이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연가 써도 되고, 여름휴가 때는 연가를 길게 쓸 수도 있다. 월요일의 지옥철이 죽어라 싫지만 멍 때리고 살다 보면 금요일도 금세 오기 마련이다. 특히 지금처럼 자영업자들이 힘들다는 상황이면 직장인으로 사는 게 나쁘진 않겠구나 안심하게 된다.
잡니다. 출근을 안 해도 되거든요.
계속 늦잠 잡니다. 출근을 안 해도 되거든요.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배달 어플을 켭니다. 배가 슬슬 고프거든요.
누워서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봅니다. 회사 안 가도 되거든요.
늘어져있다가 또 늘어져 있어요. 회사 안 가도 되거든요.
스마트폰으로 쇼핑 검색을 해봅니다. 이 정도면 '나무늘보' 이름을 사서 바꿔야 되겠거든요.
직장인인 나는 게으른 족속이므로 출근하지 않으면 늘어지는 나무늘보가 될지 모른다. 초등학교 때 희망직업이 직장인이지 않았지만, 어느새 부터인가 주변에 수많은 직장인들 중 한 명으로 맞춰 살고 있다. 누군가가 시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일어서지 않게 되었다.
직장인은 오늘도 정시 출근을 목표로 일어난다. 똑같이 지옥철을 타고 정해진 곳에서 환승을 하고, 회사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정해진 삶이지만 그리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출근길에 좋은 노래를 찾으면 신이 나고, 커피 내릴 때 새로운 향이 있으면 금광을 발견한 듯 기분이 좋아진다. 점심시간에 동료와의 밀린 수다는 세상사는 재미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메뉴가 나오면 아싸! 를 외친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월급날이 되면 안심이고, 여름휴가 때 어딜 갈까 행복한 고민을 하는 즐거움도 있다. 오늘도 출근이 체질인 직장인 당신에게 잘 해냈다고, 잘하고 있다고, 잘 해낼 수 있다고 박수를 보내고 칭찬하고 싶다.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한 당신에게 자그마한 보상을 주고 더 힘내길 바란다. 내일 출근해야 해서 일찍 자야겠다. 직장인 모두 파이팅이다.
<참고 자료>
- 초등생 희망직업 부동의 1위는?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10224104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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