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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Aug 24. 2021

최악의 소개팅 배틀

누가 더 최악을 겪었을까?

친구들과 대화하던 중, 최근 주선해준 소개팅 얘기를 전하다 우리도 소개팅 역사 쓸려면 조선왕조실록 정도 길어지지 않겠냐는 재밌는 얘기가 나왔다.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아기도 있는 친구도 있고 옛날 흑역사도 꺼내볼 겸 최악의 소개팅 배틀을 시작했다. 



A의 유부초밥 남


소개팅에서 만나 몇 번 만났고 갑자기 연락 두절되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몇 달 있다가 갑자기 연락 와서 자기 병원에 입원했으니 병문안을 오라고 했다는 거다. 착한 A는 그래도 아프니깐 가보자고 갔는데 가는 길에 다시 연락이 와서 유부초밥 먹고 싶다고 했다는 거다. 유부초밥 집이 근처에 없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결국 사서 갔다. 그 허리디스크남은 병실에서 유부초밥을 사 온 A를 보더니 "사 왔어? 싸온 게 아니라?" 허리디스크남은 유부초밥밖에 안 보였나 보다.


그래도 아프다니깐 잠시 앉았다 가려고 하는데 그 병실 안에서 갑자기 쓰윽 들어오는 손. 갑자기 그 틈을 타서 손을 잡으려 한 것이다. 그래서 왜 이러냐고 사귀지 않으면 손잡기 싫다니깐 "아, 그럼 사귀어 사귀어!" 그러고 집으로 돌아가니 또 연락두절이었다고 한다. 계절이 몇 번 바뀐 후 다시 연락이 와서 보자 해서 또 착한 A가 나가보니 "엄마가 결혼하라고 하는데 네가 그래도 괜찮은 거 같아서. 결혼 아직 안 했지?" 그래서 그냥 웃으면서 돌아왔다고. 



B의 데이터 거지 남


소개팅을 하기 위해 남자분이 연락이 왔는데 자기가 다리 다쳤다고 집 근처로 와줄 수 있냐 그래서 집 근처로 갔는데 거기서 더더더더 들어오라 그래서 그 남자 집 쪽으로 더더더더더더 가깝게 가서 소개팅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아서 두 번째는 이자카야에서 술도 마시고 이 얘기 저 얘기하다 헤어졌다. 집에 와서 카톡을 확인해보니 '나 데이터가 없는데 데이터 선물 좀 ㅋㅋㅋㅋㅋ'이렇게 왔다. 왜 그런가 싶어서 남성들한테도 물어보니 아마 더 이상 만날 생각은 없는데 그동안 돈 쓴 것도 있고 뭐로 다시 돌려받고 싶어서 그때 생각난 게 데이터가 아닌가 싶다고.



C의 늦은 첫 경험 자랑 남


만나기로 한 장소에 누군가가 차량 발판을 꺼내 열심히 털고 있어 지켜봤는데 그가 소개팅남이었다. 차량에 타서 차가 깨끗하다 칭찬하니 "다음엔 신발 벗고 타세요." 어딜 갈지 생각을 안 해온 소개팅남이 근처 백화점이 보이니 푸드코트에서 이것저것 먹자고 해서 너무 시끄러우니 다른 데 가자고 하니깐 양평 쪽에 어디 맛있는 데가 있다고 갔다. 차로 가는 내내 "아 돌아올 때 차 막히겠네." 걱정만. 도착한 곳은 백 년 전통의 냉면집이었다. 벽에 선풍기와 파리가 돌아다니고 장판이 들썩거리는 정말 오래된 전통집. 가족단위로 온 아이들은 C의 무릎을 넘나들며 뛰어다니고 냉면과 만두를 접은 다리 한쪽을 지지대 삼아 잘 드시는 소개팅남. 


다 먹고 나서 옆 슈퍼를 잠시 들리더니 캔커피와 2% 캔음료를 사 오고 얼른 서울로 가자고 했다. 역시나 차가 막혔고, 오토바이 동호회는 그 긴 차량을 피해 잘 지나갔다. 그때 생각이 났는지 "제가 뭐든 다 일찍 시작했거든요. 오토바이도 10대 때, 뭐도 열몇 살 때, 근데 딱하나 늦은 게 있어요. 뭔 줄 아세요? 바로 첫 경험. 24살이요. 늦었죠? 늦었죠?" 할 말을 잃은 C는 음악 듣자며 소리를 키웠고 도착할 때까지 창밖만 바라보았다고 한다. 몇 주 후 갑자기 온 문자로 'xx 씨, 저 오늘 집 근처 왔는데 ㅋㅋㅋㅋㅋㅋ'



D의 하녀 구하던 남


해외 거주자였는데 자기가 돈 많다고 어필하더니 동네 허름한 중국집에서 짜장면 먹으면서 자기와 결혼해서 외국 나가면 한국보다 선진국이라 고향 생각이 안 날 테니 친정에는 안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치스러운 쇼핑도 안 해야 하고, 하루 세끼 한식으로 매일 잘 차려줘야 하며 애들 가정교육 잘 시키고 살았으면 한다고 했단다. 그런 사람을 원해서 나왔다고 어필 아닌 어필을 했다. 어릴 적 부모를 따라 해외로 떠난 분은 부모의 오래된 사고방식을 그대로 받은 사람이 있는데 이 분이 그런 분이었다. 



E의 취조 남


소개팅 장소에 남자분이 안 나와서 전화하니 자기가 지금 못 나가니 어디 건물 몇 층으로 올라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보니 그분은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서 혼자 열일하고 계셨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게 좀 그래서 나와 달라고 다시 연락하니깐 자기가 못 나가니 거기서 쭉 들어오라고. 자리로 들어가니 얼굴 한번 1초 쓱 보더니 그 옆에 의자 끌고 자기 옆으로 와서 앉으라고. 그 이후로 얼굴 한번 보지도 않고 모니터만 보더니 경찰서처럼 이름, 직업, 부모님 등 자기가 궁금한 거 잔뜩 묻더니 바쁘다고 이만 나가라고 했다. 



F의 속국 남


낮에 소개팅 장소에서 만났다고 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다가 관심사가 뭐냐 물으니 여행을 좋아해서 최근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고. 재밌었냐고 어땠냐고 물어보니 일본에서 발마사지를 받았는데 예전에 속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이제 성장해서 일본인이 내 발을 주무르고 있으니 쾌감이 절로 났다고. 진짜 통쾌하지 않냐고. 발마사지를 받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내가 겪은 게 최악이 아녔구나 다시 되짚어보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최악의 소개팅 담화를 나눈 이야기이다. 물론 한쪽 얘기만 들어봐서 주관적일 수도 있고 비하할 마음은 전혀 없으며 어릴 때 겪은 일을 공유하고자 남긴다. 서로 안 맞았다 뿐이지 각자 가정을 꾸려서 잘 살고 있으니 과거는 잊고 행복하게 훨훨 날길. 

과거는 잊고 이제 행복한 각자의 가정 안에서 사랑이 충만하길 @Tyler Nix,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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