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ADHD의 슬픔>을 읽다가

정지음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에 관하여

by 감자


반동분자


내가 서평을 쓰는 방식은 어딘가 돌아있다. 말 그대로다. 서평을 먼저 쓰고 거기에 맞춘 책을 읽는다. 오늘의 희생양은 정지음 작가의 <젊은 ADHD의 슬픔>이다. 제목만 읽고 떠오르는 단상을 적고. 한 단락 한 단락마다 떠오르는 단상들을 적으니 제법 그럴싸한 에세이가 나왔다. 이 문단은 사실 책 읽기 전에 먼저 써버린 에세이에 대한 자기반성과 연민인 셈이다.


방금 오전 8시를 기리는 알람이 죽었다. 1초 만에 꺼진 알람처럼 오전 8시는 죽어버렸다. 활자 그대로 죽어버렸다. 간밤 주량을 넘기도록 소주를 마셨다. 회를 몇 점 먹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듣다가 왔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랑 노래방에 가면 내가 굳이 잘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든다. 연신 고개만 끄덕거리고 어깨춤을 추다가 온다.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의 노래방 놀음은 대개 그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끝난다. 굳이 문장에 ‘그렇게’와 ‘이렇게’를 집어넣은 것은, 또 ‘것’이란 표현을 집어넣은 것은 ‘쓰지 마! 쓰지 마!’ 강요하는 편집 교정 책에 대한 소심한 반란이다. 쓰면서 반쯤 미쳐있으므로 내 글도 반쯤 미친 시선으로 읽히기를. 불광불급.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내가 한 명 더 존재하는 느낌을 받았다. 정지음 작가도 불광불급이 좌우명이었단다. 하지만 그녀는 불광불급이라는 좌우명을 버린 이단아이다. ‘미쳐야 미칠 수 있다.’는 꺾이지 말아야 할 신념에서 도망치다니. 스스로를 해방한 그녀를 이 광신도적 믿음에서 추방한다. 내가 무슨 권리로 말인가. 이제 머리통이 비워졌으니 책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 쓰고 다시 읽어보니 도른자 같다. 사실 도른자가 맞다. 나는 사백안이다. 미신을 믿는 분들은 피해 가시길. 범죄자 같은 관상으로 언젠가 범죄자를 변호할 날이 올지 모른다. 그렇다 나는 변호사 시험을 준비 중이고 변호사가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종류의 걱정이 머릿속에 그득 차 있다. 구태여 그득으로 쓴 이유는 가득으로 쓰면 뭔가 차곡차곡 생각들이 차 있는 느낌인데 그득으로 쓰면 질서 없이 대충 위태롭게 쌓여있는 느낌을 줄 것만 같아서이다. 불안하다 불안해. 나의 불안을 그대에게.


여기까지 읽고 ‘이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지,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런 글을 쓰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의도가 정확히 먹혀든 ‘샘’이다. 셈이 아니라 샘이다. 이딴 잡다한 생각이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펑펑 솟구친다. 괴롭다 괴로워. 안 그래도 힘든 세상살이에 모래주머니를 두어 개 차고 달리는 느낌. 이것이 내가 겪는 성인 ADHD이다. 이만한 ADHD 책 소개가 또 있을까. 와 내가 여기까지 쓰다니. 스스로가 대견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이 미친 질주가 종국적으로 결론을 향해 가고 있나 보다.


내 글은 주제에서 자꾸만 샌다. 틈이나 구멍으로 줄줄 흐르듯. 예전부터 글만 쓰면 어느덧 주제보다는 파생되는 잡념에 글이 먹힌다. 파하하.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루는 까닭은 첫째는 술이 덜 깨서, 둘째는 ADHD 의심 증상 때문이며, 셋째는 ADHD적 글쓰기를 간접 체험시켜주고 싶은 까닭이다. 꼬끼오.


지금 책을 반쯤 읽었더니 반쯤 미쳐버린 글이 써진다. 오히려 좋다. 한 권을 다 읽으면 360도 회전해서 올바른 내가 될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쓰인 글을 읽고, 솔직한 내가 되었다. 만세. 빌려온 책이라 꽃을 그리지 못함이 통탄스럽다. 수험서에는 집중이 흩어지거나 번뇌가 머릿속에 자리하면 꽃을 한 송이 그리고 털어낸다. 머릿속이 꽃밭이라는 표현은 일본에서 유래했고, 안 좋은 의미로 쓰인다고 하니, 머릿속을 꽃밭으로 만들 수 없어서 수험서적을 꽃밭으로 만들고 있다.


여기까지 읽느라 고생 많았다. 내 독서도 내 인생도 책을 덮으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갑작스러운 엔딩 크레디트. 이 글은 인생이다. 독수리는 아니고. 끼룩끼룩. 우리는 각자 다른 곳에서 태어나서 언제 이 세상을 하직할지 모르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기분 나쁠 수 있겠지만, Saint Augustine 같은 옛 성자의 에세이를 봐도 그들의 유년기는 불안정한 삶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렇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불완전하고 불안한 존재들이다. 응애. 미친 듯 소리를 질러보자. 밖에서 소리를 지를 수는 없으니 글 속에 소리를 지른다. 시끄러운 글쓰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응애.


내가 왜 이러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세상만사 모두가 짱구가 되는 그날까지.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ADHD 확진자를 응원한다. 추신. 이 글을 읽고 ADHD에 대한 선입견이 생겼다면 바로 버리면 좋다. 세상은 여전히 정상이고 비정상은 나 하나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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