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좋은 일이 있었다. 막노동을 하며 여기저기 꾸준히 이력서를 제출한 결과 집 근처 영어학원에서 초등영어 강사로서 커리어를 쌓게 되었다. 같이 현장에서 일하시던 반장님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전혀 다른 분야로 이직하게 되었다. 삽과 망치를 내려놓고, 대학생 때 전공했던 영문학을 살릴 수 있는 직장을 가게 되었다. 첫 프리랜서로서의 삶이 기대되고 설렌다. 이 이야기는 2024. 1. 22. 월요일. 기적적인 첫 출근 날의 이야기이다.
옷장에서 제일 잘 맞고 단정한 옷을 꺼내 입었다. 숨을 참으며 바지 후크를 잠그고, 배 나온 티가 나지 않게 와이드 핏 셔츠를 찾아 입었다. 거울 앞에 서보니 웬 산적이 멋을 내고 있었다. 막노동을 하면서 이렇게 꾸밀 일이 없었기 때문에 머리부터 수염까지 산발이었는데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동네에서 제일 잘한다는 미용실에 들러 정해인 배우님 사진을 보여드리며 이렇게 단정한 이미지로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미용실 원장님의 흔들리던 눈동자란……. 초저녁부터 먹고 잠들어 호빵맨처럼 부은 얼굴은 어쩌시지 못하였지만, 선생님들의 실력은 만족스러웠다. 몇 살은 어려 보이게끔 여기저기 다듬어 주시고, 눈썹도 정리해 주셨다. 몇 년간 취업을 준비하면서 방문하던 가게였던 지라 불경기에 성공한 취업을 축하받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이었다.
오후 한 시 삼십 분. 출근시간이 속절없이 다가왔다. 업무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 30분 전에 학원에 도착했다. 2년 먼저 시작하신 선배 선생님들과 담소를 나누고 격려와 응원을 받으며 첫날부터 수업에 투입되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문법에 삐질 땀을 흘리고 단어와 문법에 식견이 높은 초등학생들의 수준에 놀라다 보니 어느덧 오후 여섯 시. 퇴근시간이 되었다. 오늘 하루 근무 소감을 말하자면 아이들도 착하고 선생님들도 친절하셔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 왔다. 특히 아이들이 거의 나를 가르치다시피 해주었다. "저번 숙제는 여기까지였고, 오늘은 여기 진도를 나가면 돼요. 단어 시험은 4학년은 하루에 25개, 5, 6학년은 50개인데 저는 오늘 안 외워왔어요!" 당당하고 해맑은 친구들을 바라보며 34년간 지속된 '카메라 없는 체험 삶의 현장'에서 바닥나가던 인류애가 힘차게 솟구쳤다.
강사명을 정하는데 '장고 끝에 악수' 두기 싫어서 번뜩 떠오르는 감자로 하기로 했다. 그렇게 감자 선생님이 되었다. 아이들도 좋아했고 선생님들께서도 즐거워하셨는데 과분한 반응에 '감자쌤'도 덩달아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오늘 아이들을 가르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의외로 영어라는 학문 자체에 있지 않고, 아이들의 이름이 외워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리 때는 "은주, 선화, 병수" 같은 이름들이 많았는데 요즘 친구들 이름은 생소하고 아기자기하게 이뻤다. 이름을 틀릴 때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오늘 두 친구들의 이름을 외웠으니, 내일은 세 친구의 이름을 외우는 데 성공해 보자. 아이들의 미소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내 첫인상은 어땠을까. 내일은 아이들에게 친근하고 재밌는 선생님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