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로(結露)
고객센터 상담원 근무 시절. 2021년 여름이었다...
"상담원아 느그는 시원한 데서 일하고 내는 더워도 되고. 맞제?"
에어컨이 고장 난 고객에게 가장 빠른 수리 일정을 안내한 초보 상담원이 고객에게 혼이 났다. 싱숭생숭해서 휴식을 걸고 화장실에 갔더니, 냉장고 파트로 배정된 동료의 두 눈이 퉁퉁 부어있다. '저긴 더 힘들겠구나.' 그렇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마음을 삭이며 자리에 돌아온다.
고객 응대에 참여했던 초보 상담원들은 하나같이 낯빛이 어둡다. 익숙지 않은 업무에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고, 고객의 불만에 주눅이 들면 업무는 더욱더 더뎌진다. 짧은 점심시간에 넘어가지 않는 쌀알을 삼키고, 다시 자리에 앉아 헤드셋을 쓴다. 소설 소유기 중, 손오공의 금고아는 머리를 파고들지만 상담원의 '금고아'는 수화기를 타고 흘러들어온 감정 뭉텅이가 귓속을 파고든다.
언젠가는 수리기사님 방문 일정을 협의하고 있었는데 고객의 마음에 드는 일정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연신 된소리가 건너오는데, 지침대로 가장 빠른 일정을 안내해 드리고 취소건 발생 시 빠른 일정을 안내해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너무 매뉴얼대로 한 티가 났을까. 고객은 얄팍한 수 쓰지 말라며 노발대발하고, 겨우 고객이 통화를 선 종료했다.
종료 후 방문 일정을 조회하는데, 다른 고객님이 예약을 취소하셔서 방금 고객이 원하시던 일정이 가능했다. 고민 끝에 떨리는 마음으로 다이얼을 돌렸다. '조금은 좋아하시지 않을까'란 예상은 정확히 빗겨나갔다.
"꼭 이렇게 지랄을 해야 일 처리를 해주냐"라는 지극히 날카로운 반응이 돌아왔을 뿐.
우리도 집에 가면 소비자다. 당연히 고객의 불만에 십분 공감하니까 최대한 빠른 수리 일정을 잡아주고 싶다. 하루아침에 냉동실 속 음식이 녹는다니 상상하기도 싫다. 그래서 욕설을 들어도 내색할 수 없다. 친절과 봉사로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니까.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가족에게 이런 힘듦을 내색할 수 없다. 고객이 어머니 안부를 물으면 어머니께 죄송하고, 아버지 안부를 물어도 어머니께 죄송한 감정노동자니까.
감정을 추스르고 포근한 침상에 몸을 뉜다. 한숨을 이불 삼아 덮으면서 눈꺼풀 아래로 떨어지는 별똥별에 조용히 빌어본다. 내일은 친절한 고객만 만날 수 있기를.